[And 스포츠] “럭비가 무섭다고?… 여성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죠”

‘서울시 스포츠 재능나눔 럭비 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자 아마추어 럭비 선수들이 14일 서울 서초구 잠원 한강공원 트랙 구장에서 럭비 게임을 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순수 여자 아마추어 럭비팀 ‘엘리스’와 서울시체육회가 함께 진행한 럭비 프로그램에는 80여명의 성인 여성 및 청소년들이 참여해 럭비의 재미를 배웠다. 최종학 선임기자
 
14일 진행된 ‘서울시 스포츠 재능나눔 럭비 교실’에서 어린 아이들이 남자·여자 할 것 없이 럭비공을 빼앗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해되셨죠? 레디, 고!”

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잠원 한강공원의 트랙 구장.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 타원형의 럭비공이 오갔다. 직장인과 대학생 등으로 구성된 8명의 아마추어 여자 럭비 선수들은 코치 2명의 지도 아래 다양한 경기 전술을 몸으로 익히고 있었다. 합이 맞을 때는 즐거워서 까르르 웃음도 나왔지만, 코치가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전략을 설명할 때 집중하는 눈빛은 진지했다. 국내 유일의 순수 여자 아마추어 럭비팀 ‘엘리스’의 훈련장에는 프로팀 못지 않은 열기와 의욕이 가득했다.

2014년 창단된 엘리스는 대부분 직장이나 학교 등 본업이 있는 여성들이 취미로 럭비를 즐기는 공간이다. 현재 등록된 총인원은 16명. 매주 주말 아침에 모여 2시간씩 패스나 킥 훈련을 진행하며, 여자 외국인들로 구성된 럭비팀 ‘시스터즈’와 종종 시합도 한다.

엘리스가 훈련하는 푸른 잔디 구장에서는 소속 선수들 외에도 남녀노소가 럭비공을 던지며 달리고 있었다. 럭비를 생활체육의 하나로 널리 알리기 위해 서울시체육회와 엘리스가 연계해 진행하는 ‘서울시 스포츠 재능나눔 럭비 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초등학생 딸아이 손을 잡고 함께 온 어머니를 비롯, 총 80여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난달 1일부터 럭비를 배웠다. 이날은 럭비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프로그램의 피날레로 미니 럭비 게임이 진행됐다. 그간 배운 규칙과 기술을 바탕으로 터치 럭비(태클·몸싸움 없이 터치만으로 플레이하는 럭비 종목) 경기가 펼쳐졌다. 성인 여성반은 사람이 부족해 엘리스 선수들과 일반인 참여자들, 남자 코치가 함께 섞여 A·B팀을 만들었다. 아마추어 경기였지만 경쟁은 치열했다. 시작 2분 만에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A팀의 여자 선수가 공을 잡고 질주해 첫 득점을 올렸다. 선수들은 서로 밀치며 견제하는 한편 노룩패스 같은 창의적 플레이도 적극 시도했다. 땅에 구르거나 넘어져도 몸을 사리지 않고 금세 일어났다. 강한 패스를 가슴으로 받아내 트라이(득점)에 성공할 때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전후반 합쳐 30분의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직장인 이가희(27)씨는 ‘재능나눔 럭비 교실’ 프로그램을 통해 럭비를 처음 접한 후 엘리스에 입단했다. 이씨는 “럭비가 생각보다 과격하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서울시체육회 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운동은 컬링과 스킨스쿠버에 이어 럭비가 세 번째. 이씨는 “평소에 운동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럭비는 역동적이라 좋았다”며 “상대를 뚫고 넘어가 트라이했을 때는 짜릿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럭비가 남성 운동이라는 선입견에 대해 김지웅 럭비 코치는 “여자라서 피지컬이 부족하거나 전술 이해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며 “남녀가 함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구기 종목”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터치 럭비 월드컵에서는 남녀 혼성팀으로 시합하는 경기가 공식 종목으로 편성돼있다.

1년 넘게 엘리스에서 활동해 온 한이슬(30)씨는 한달에 2∼3차례 서울 은평구 집에서 한 시간 반씩 걸려 엘리스 훈련장인 잠원공원에 온다. 게임회사에서 일하기에 근무가 불규칙할 때도 많지만 최대한 훈련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한씨는 “시간 내기 쉽지 않지만 재미있어서 그만둘 수가 없다. 여자들끼리 땀 흘리며 상쾌하게 운동 끝낸 후 카페에 가 케이크 먹으며 수다 떠는 게 낙”이라며 환히 웃었다.

엘리스에는 외국인도 눈에 띈다. 여자가 럭비를 할 공간이 워낙 없다 보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시스터즈 외에도 럭비팀을 수소문해 찾아오는 것이다. 홍콩에서 온 레일라씨(22)는 3년 전부터 럭비를 취미로 즐겨왔다. 레일라씨는 “홍콩에서는 럭비 클럽에 여자 선수만 30여명, 남자는 90명 넘게 있고 클럽도 많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럭비 인프라는 굉장히 열악하다. 여자의 경우 청소년 시절 럭비를 할 수 있는 클럽팀은 전무한 형편이다. 럭비 국가대표 출신인 엘리스의 안단비 매니저는 “럭비가 활성화돼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럭비의 재미를 알았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28일 시스터즈와의 안산시 럭비 협회장배 경기를 앞둔 엘리스 팀원들의 땀방울은 요즘 마를 날이 없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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