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해변, 거울, 새… 꿈의 풍경

폴 내쉬 ‘Landscape from a Dream’. 1936. 유화. Tate Britain


영국 화가 폴 내쉬(1889∼1946)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명성이 높은 아티스트다. 런던에서 태어나 슬레이드 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20세기 전반 영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풍경화에서 두각을 보였다. 그림만 그리기엔 가정형편이 어려워 응용미술, 삽화, 무대미술을 섭렵하며 활동했다. 내쉬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식 종군화가로 지목돼 전쟁의 ‘쓰라린 진실’을 강렬하고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에 그린 ‘죽은 바다(Totes Meer)’는 전쟁기록화 중 걸작으로 꼽힌다. 고요한 바닷가에 전투기들이 추풍낙엽처럼 추락해 바다를 펄펄 끓어오르게 하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공습으로 줄기만 남은 수풀, 지뢰 폭발로 생긴 검은 구멍, 가시 돋친 철망을 비정하게 그려낸 연작도 유명하다.

그러나 폴 내쉬에게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바로 아름다운 영국의 자연과 고대 유적을 그만의 기법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초기에 그는 반듯하게 해변 풍경 등을 표현했으나 점차 꿈이나 환각에 기반한 심리적 풍경화로 선회했다. 이 그림은 내쉬가 자연주의와 낭만주의를 거쳐 초현실주의에 깊이 빠져든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에 매료됐던 그는 무의식의 세계인 꿈을, 현실의 풍경과 뒤섞어 한 편의 연극무대처럼 표현했다. 그림 속 모티프들은 각기 다른 것을 상징하는데 커다란 매는 현실세계를, 거울에 투영된 구(球)는 영혼을 지칭한다. 화가는 런던 남부 도셋의 푸른 파도와 절벽을 배경으로 거울, 병풍을 ‘그림 속 그림’처럼 배치해 4차원적인 초현실의 세계를 매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테이트미술관이 기획한 ‘마음의 풍경’전에 포함돼 중국 베이징국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