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쿨 재팬’은 없다, 한류에 자극받은 일 정부 주도 문화 수출 전략의 부진

사진=게티이미지
 
일본 도쿄에서 메이드 카페를 홍보하는 젊은 여성들과 피규어를 파는 상가의 내부. 장지영 기자
 
도쿄 오다이바의 실물 크기 건담(왼쪽)과 ‘크레용 신짱’ 25주년 기념 전시회. 장지영 기자
 
일본의 전통 스포츠 스모, 애니메이션 ‘아톰’,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폐막식 때 슈퍼마리오로 등장한 아베 신조 총리, 일본 대표음식 가운데 하나인 우동(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AP뉴시스, 게티이미지


2016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폐막식의 최고 화제는 ‘아베 마리오’였다. 2020 도쿄올림픽을 홍보하는 퍼포먼스에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유명한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 차림으로 등장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이른바 ‘코스프레’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동시에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인기 있는 일본 콘텐츠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시 함께 공개됐던 도쿄올림픽 홍보 동영상에는 슈퍼마리오와 함께 도라에몽, 헬로키티, 캡틴쓰바사, 팩맨 등 일본 대표 캐릭터들도 대거 등장했다. 아베 마리오는 바로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쿨 재팬(Cool Japan)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하지만 쿨 재팬 전략은 최근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대중문화 및 생활문화와 관련된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관민펀드 ‘쿨 재팬기구(해외수요개척지원기구)’가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주도하는 쿨 재팬 전략에 대한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원래 ‘쿨 재팬’ 용어는 2002년 미국 저널리스트 더글러스 맥그레이가 외교전문잡지 ‘포린 폴리시’에 게재한 기사에 나오는 ‘국민총매력지수(Gross National Cool)’ 개념에서 기원한다. 당시 맥그레이는 1990년대 포켓몬과 헬로키티가 수십개국에 수출된 사례를 가지고 일본의 국민총매력지수 증가를 언급했다.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맥그레이의 기사는 일본 정부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이 자국 콘텐츠의 해외수출 및 브랜드 파워의 구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영국 정부가 추진한 국가 브랜드 전략 ‘쿨 브리태니아’를 본떠 ‘쿨 재팬’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사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은 이미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서 쿨 재팬 전략을 추진하게 된 것은 한류의 인기가 한국 브랜드 향상에 큰 역할을 하면서 일본이 선점했던 시장들을 잠식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한류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의해 성장해 왔다는 판단 아래 일본도 정부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일본은 2010년 6월 경제산업성에 ‘쿨 재팬실(室)’을 만든 뒤 각종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쿨 재팬 전략은 일본의 국가정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쿨 재팬 관련 사업은 수익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 11월 일본 정부는 쿨 재팬 전략을 좀 더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는 관민펀드 ‘쿨 재팬 기구’를 발족시켰다. 쿨 재팬을 아베노믹스의 핵심으로 본 아베 총리는 아예 쿨 재팬 전략 담당상이라는 특임대신까지 신설했다. 쿨 재팬 기구에는 일본 정부와 민간기업들이 각각 출자한 300억엔, 75억엔을 합한 375억엔(약 3765억원)이 투입됐다. 출자금은 더 늘어 2018년 4월 현재 693억엔에 달한다.

하지만 2016년 후반부터 쿨 재팬 기구에 대해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초 콘텐츠 중심의 문화산업이 그 대상이었지만, 점차 ‘일본적인 것’이라면 모든 게 다 쿨 재팬의 범주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쿨 재팬의 대상이 아닌 것이 없다는 비판을 했고, 쿨 재팬은 구체적인 콘텐츠가 아닌 추상적인 개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쿨 재팬 기구가 일본 영상제작회사 ‘이마지카 로봇 홀딩스’와 함께 세계 최대 자막 제작회사인 미국의 SDI미디어를 인수했다가 손실을 본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론이 더욱 힘을 얻었다.

2017년에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쿨 재팬 기구가 투자했던 사업들의 성과가 대부분 미미한 것이 잇따라 드러난 것이다. 백화점업체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이세탄 더 재팬스토어’를 개장할 때 쿨 재팬 기구가 10억엔을 투자했다 손실을 봤다. 판매하는 일본 상품들이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은데다 지나치게 고가여서 거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쿨 재팬 기구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총 29건에 620억엔을 투자했는데, 성과가 있었던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자가 누적되자 쿨 재팬 기구는 지분을 기업에 넘기고 발을 빼려다가 올해 4월 정부 독립기관인 회계검사원의 감사를 받았다. 결국 지난해 3월을 기준으로 했을 때 쿨 재팬 기구는 17개 사업에 310억엔을 투자해 44억5900만엔의 손실을 봤다.

비난이 빗발치자 쿨 재팬 기구는 “장기적으로 배 이상의 수익성을 확보한다”고 목표를 수정하고 대표도 교체했다. 최근에는 심각한 경영 문제를 보이는 쿨 재팬 기구를 또 다른 관민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다.

쿨 재팬 기구의 실패에 대해 일본과 해외 언론은 “관이 주도하는 쿨 재팬 전략은 전혀 쿨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쿨 재팬 기구의 경영진이 대부분 정부 부처에서 낙하산으로 온 공무원들인 만큼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실패가 예견됐다는 것이다. 미국 지식공유 웹사이트 쿠오라에는 “무엇을 투자해야 할지 모르는 늙은 아저씨들의 계획은 전혀 기대를 가질 수 없게 만든다”고 비꼬는 글도 올라와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쿨 재팬’의 향연으로 만들고 경제 활성화의 기회로도 삼으려던 아베 정권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도쿄=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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