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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 후 학교는 2차 가해를 택했다”



‘스쿨미투’(SchoolMeToo·학내 성폭력 고발) 이후 대부분 학교는 피해 해결이 아닌 2차 가해를 선택했다. 제보자 색출은 물론 피해 학생을 앉혀놓고 명예훼손이나 생활기록부를 언급하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성폭력 실태조사 요구에는 “선생님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라며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청소년페미니즘모임(청페모)의 운영위원 양지혜(21·사진)씨는 “학교는 학내 성폭력 문제를 덮기에 급급하다”며 “광장에서 다시 청소년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청페모는 ‘학생의 날’인 11월 3일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열 계획이다. 양씨는 “학생들이 큰 용기를 내 스쿨미투를 했지만 바뀐 건 없다”며 “오히려 피해 학생이 신변의 위협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고양의 J고등학교는 스쿨미투 직후 고발자 이아란(가명·18)양을 색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양은 “학교는 가해자 처벌 대신 제보자 색출에 바빴다”고 말했다. 이후 학교 측은 이양과 이양의 어머니, 경찰, 교사 2명의 면담에서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 있다”며 스쿨미투를 고발한 트위터 게시물 삭제를 종용하기도 했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양은 “대학을 안 갈 거라서 학교 압박이 견딜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스쿨미투 이후 일부 학교는 피해 학생에게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언급하며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이번 집회의 한 지원자는 “학교에서 성추행을 당한 친구는 생기부 협박과 더불어 가해자의 동료 교사에게 불려가 고소를 취하해 달라는 ‘연설’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인지 스쿨미투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스태프 모집기간을 7일로 잡았지만, 첫날 70명이 지원해 하루 만에 조기 마감했다. 양씨는 “작게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자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큰일이 됐다”며 “열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지원 동기는 다양했다. “할 수 있는 게 국민청원밖에 없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후배들이 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학교는 성추행 사건을 덮으려 한다. 미숙한 제가 집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등이었다. 양씨는 “재학생의 피해 고발이 어렵단 걸 알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학창시절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한 남학생에겐 “못생겼다. 전봇대에 꽂아버리고 싶다”는 말도 들었다. 양씨는 “학창시절을 겪으며 여성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현재 23개 단체 및 학교가 스쿨미투 집회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 중 7개 학교는 스쿨미투 고발 학교다. 교사단체 3곳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스쿨미투가 한국의 교육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양씨는 “과도한 입시경쟁 속에서 교사가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학생부 등을 관리해 성폭력 피해 목소리가 억눌려 왔다”고 말했다. 사립학교의 문제도 있다. 양씨는 “스쿨미투의 80%는 사립학교에서 나왔다”며 “사립학교는 교육청 징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만이라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청소년기를 ‘견디는 시간’으로 보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양씨는 “청소년기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인데 그동안 학교는 ‘대학 가면 괜찮아진다’며 견디라고만 했다”며 “스쿨미투가 여태 고발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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