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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 복심, 원격으로 현장 지켜봐… ‘목 가져오라’ 지시”

자말 카슈끄지와 약혼녀 하티제 젠기즈가 지난 2일(현지시간) 이스탄불의 한 아파트로 들어서는 모습을 담은 CCTV 영상이 22일 공개됐다.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으로 들어가기 몇 시간 전 모습이다. AP뉴시스


터키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를 우발적 범행으로 몰아가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카슈끄지 살해가 계획적으로 이뤄진 ‘정치적 살인’이라고 규정하며 사우디 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집권여당인 정의개발당(AKP) 의원총회에서 “카슈끄지가 사전에 꼼꼼하게 계획된 정치적 암살로 숨진 것이 분명하다”면서 “터키 당국은 이번 범행이 계획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갖고 있다. 터키와 전 세계는 이번 범행의 계획자와 실행자가 합당한 책임을 져야만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우디 요원들이 범행 현장을 사전 답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카슈끄지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서기 하루 전인 지난 1일 사우디 요원 3명이 이스탄불 인근 숲을 돌아봤다는 것이다. 답사는 카슈끄지 시신을 처리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이 맞는다면 카슈끄지가 사우디 요원들과 몸싸움 끝에 우발적으로 피살됐다는 사우디 정부 측 해명은 거짓이 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범행에 연루된 사우디인 18명을 이스탄불에서 재판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키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사우디 측 해명이 나올 때마다 통신 감청 등으로 수집한 정보를 자국과 해외 언론에 조금씩 흘리며 사우디 왕실을 궁지로 몰아왔다.

로이터통신은 카슈끄지가 지난 2일 살해되던 당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최측근 사우드 알 카타니 궁정고문이 영상통화플랫폼 스카이프를 통해 현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22일 보도했다. 알 카타니 고문은 당시 총영사관 사무실에 설치된 빔프로젝터를 통해 카슈끄지 고문·살해 현장과 쌍방향 영상통화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터키 정보 소식통 등에 따르면 알 카타니 고문과 카슈끄지는 당시 영상통화로 격한 말다툼을 했다. 그러자 알 카타니 고문은 현장에 있던 자국 요원들에게 “저 개의 목을 가져오라”며 카슈끄지 제거를 지시했다. 다만 알 카타니 고문이 카슈끄지가 요원들에게 살해당하고 사체가 훼손되는 모습까지 지켜봤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스카이프 녹음 파일은 터키 정보 당국의 감청 활동으로 수집됐으며, 현재 에르도안 대통령 수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연설에서 카슈끄지 살해 당시 녹취 파일이나 카슈끄지의 시신을 운반하는 용의자 사진 등 사우디 왕실에 결정타를 날릴 핵심 증거물은 공개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역시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사우디 해명을 믿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지금까지 내가 들은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면서 “터키와 사우디에 사람을 많이 보내놨으니 곧 진상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나 해스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터키로 급파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사막의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사우디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는 카슈끄지 살해 파문 영향으로 거물급 인사들이 무더기로 불참한 가운데 23일 개막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FII에 참석해 연설하려던 일정을 취소했지만, 대신 리야드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양자 회동을 함으로써 사우디 측 체면을 세워줬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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