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쫄지 않는 청춘, A4용지 작품 비닐 씌워 옷걸이에 걸다

노상호 작가가 최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옷걸이 작품과 걸개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미술은 좁은 작업실에서 작품을 효과적으로 제작하고 보관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한다는 게 특징이다. 윤성호 기자
 
컨베이어 시스템 이젤 회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제공
 
A4용지 그림을 대형 모자이크화처럼 전시한 공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제공


‘청춘이 멈춰 섰다’고들 한다. 심각한 취업난에 구직활동을 포기하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청년 예술가라고 다를 바 없다. 특히 미술가는 고용해줄 회사도 없어 ‘1인 자영업자’ 같은 처지다. 밥벌이에 대한 걱정이 더 원초적일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청년 작가 노상호(32)에게서는 이런 태도가 감지된다. 청춘 예술가들이 처한 밑바닥의 생존 조건을 역이용하는 총명함과 이를 밀어붙이며 현실화시키는 베짱이 있다. 반란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비장하지 않고 유쾌하다.

노상호의 무명시절, 역시 무명의 인디밴드 혁오의 리더였던 오혁과의 브로맨스는 제법 알려져 있다. 오혁의 대학 선배였던 그는 2014년 나온 혁오의 첫 앨범 ‘20’부터 시작해 올해 5월 발매된 앨범 ‘24’까지 앨범 재킷 디자인을 도맡아왔다. 혁오가 먼저 떴고 그 수혜를 입은 건 사실이니 노상호는 시쳇말로 운발이 있긴 하다. 이는 미술계가 그를 주목하는 속도를 앞당긴 측면이 있다.

주목되는 건 그가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방식이다. 이를 말하기에 앞서 그의 작품세계를 일별해보자. 미대를 졸업했고, 미래는 불안했고, 작가는 되고 싶었고, 그래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더 불안했던 20대 후반, 그는 매일매일 숙제하듯 드로잉을 했다. 어느 날, 자신이 PC에서 본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 인스타그램 등 SNS 상에서 부유하는 이미지를 채집하고 고른 뒤 그걸 프린트해 먹지를 대고 그리는 작가가 됐다. 놀라운 건 그가 대놓고 자신을 ‘먹지 작가’라고 말한다는 데 있다.

노상호는 말한다. “창작이란 뭔가요? 나무를 그리는 것과 나무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에 차이가 있나요? 팝아트만 보더라도 다 뭔가 참조해서 그려왔잖아요. 저는 그걸 더 노골적으로 드러낼 뿐입니다.”

이미지를 옮기지만 그대로 베끼지는 않는다. 색을 바꾸고 이미지나 크기도 바꾸게 된다. 맥락에 따라 재편집되고 취사선택이 이루어진다. 이미지 편집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 방식은 SNS에 누군가 이미지를 올리면 누군가는 이를 퍼 나르며 재편집되는, 가상공간에서의 이미지 소비 방식에 대한 직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만화 캐릭터, 음식 사진, 여행 사진 등 온라인상에 떠도는 친숙한 이미지를 특유의 방식으로 생산하고 또 디스플레이 한다. 여기에 독창성이 있다. 우선 처음엔 A4용지에 그린다는 점이다. 작업실도 제대로 없는 무명의 청년 작가였던 그는 자신이 관리할 수 없는 크기가 싫다고 했다. 규격화된 A4용지는 스캔하기 좋고, 액자를 맞춰도 규격품이어서 싸게 나와 좋다.

두 번째, 이걸 비닐에 씌운 뒤 옷걸이에 걸어 전시한다. 마치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한 와이셔츠처럼 작품이 걸려 있다. 작은 공간에 많이 걸 수 있고, 미술품을 소비재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예술과 일상의 구분을 없애는 효과도 있다.

세 번째, A4용지 판넬화를 다닥다닥 붙여서 거대한 모자이크처럼 꾸미기도 한다. 어차피 파편화돼 그려진 이미지들이니 공간에 맞게 재편집되며 크기의 스펙터클이 일어난다.

네 번째, 대형 걸개그림으로 제작해 전시하기도 한다. A4용지 속 이미지들은 이렇게 대형 걸개그림 안에서 재활용된다. 세로 270m의 대형 캔버스천에는 관련성 없는 이미지들이 부딪치듯 이어져 있다. 크기가 주는 감동이 있는데, 번듯한 작업실이 없는 젊은 나이에는 전시가 끝나면 두루마리 그림처럼 둘둘 말아 보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스스로 고안한 장치도 있다. 옆에 달린 손잡이를 빙빙 돌리면 그림이 다 그려진 캔버스가 뒤로 밀려나면서 빈 캔버스가 나타나는 ‘컨베이어 시스템 이젤’이다. 가로 1m, 세로 1m의 장방형의 크기. 이걸 다 늘어뜨리면 길이가 270m나 된다. 역시 좁은 작업실에서 제작하고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모든 형식은 공간이 너무 좁아 몸을 구부리고 일해야 했던 청년 예술가의 슬픈 작업 조건이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그는 열악한 조건에 낙담하고 한숨짓느니 그 조건을 자신의 무기로, 정체성으로 삼았다. 그걸 과장했다.

금박 액자를 씌워 권위와 전통에 매달리느니, 가볍고 얇고 경박한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청춘의 현재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즉, 캔버스는 유광 바니쉬를 발라 더 번쩍 거리게 하고, 옷걸이 그림은 투명 비닐에 넣고, 형광색 보완물을 덧대 가벼운 느낌이 더 나도록 했다. 걸개그림은 너무 얇아 팔랑거린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노상호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 Ⅱ’(내년 2월 10일까지)에서 이 모든 걸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세대로서의 정체성을 시각화함으로써 기성세대의 미술 전통을 꼰대 문화처럼 보이게 하는 총명함이 그에게 있다. 가히 즐기는 자의 태도다.

이달 초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아라리오갤러리는 갓 서른을 넘긴 그의 작품을 원로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나란히 부스에서 판매했다. ‘컨베이어 시스템 이젤’에 그린 회화가 1000만원에 나온 것이다. 쫄지 않은 청춘이 거둔 성과가 눈부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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