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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신종수] 의인



아침 식사를 하며 TV 뉴스를 보다가 눈물이 나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 새벽 3시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귀가하는 도중 손수레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가는 어느 할머니를 보고 선뜻 다가간 열아홉 살 청년. CCTV 영상 속에 비친 이 청년은 수레를 밀면서도 고개를 돌려 할머니와 눈을 맞춰가며 대화를 나눴다. 이어 아나운서가 전하는 교통사고, 뇌사, 장기기증 등의 팩트들이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먼저 전해졌다.

제주한라대 1학년인 김선웅군은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부끄러움을 잘 타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김군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메신저 비밀번호를 보고 또 울었다. 번호는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말없이 엄마를 그리워했던 막둥이가 결국 엄마 곁으로 갔습니다.” 가족들은 김군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경찰조사 결과 김군은 할머니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과속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가 됐다. 할머니는 다치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닌 김군의 장기들은 7명의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전했다. 장례식은 김군이 다니던 제주 성안교회에서 치러졌다. 김군을 비롯해 누나 형 등 2남 1녀와 아버지는 오래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김군의 어머니 역시 뇌사 상태로 오래 누워있다가 장기기증을 한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김군의 누나 김보미(30)씨는 “동생을 잃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면서도 “나중에 뉴스를 통해 동생이 할머니 수레를 미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위안을 받았고 지금은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군의 아버지도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운 마음에 지금은 다시 힘을 내 일하고 있다.

LG는 김군에게 의인상을 수여키로 했다. 의인에게 기업이 보답한다는 의미로 고 구본무 회장의 뜻을 반영해 제정된 상이다. 꼭 이 상이 아니더라도 김군은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의롭다는 칭함’(稱義·justification)을 받았다. 아르바이트로 지친 새벽 귀갓길에 김군의 신앙은 할머니의 손수레를 밀어주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약 2:17), 믿음은 행함의 열매를 만들고, 행함의 열매는 믿음을 확증한다(R.C 스프룰)고 했던가. 이 가을, 아름다운 한 청년의 죽음을 추모한다.

신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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