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메이지 연호 개원 파란만장한 유신의 시작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각의에서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식을 10월 23일 도쿄 헌정기념관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메이지라는 연호가 시작된 날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인데, 메이지의 시작과 관련된 계기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고메이 천황이 1867년 1월 30일 36세를 일기로 병사하자 바로 그해 2월 13일 후계자인 무쓰히토(睦仁)가 뒤를 이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교토 조정은 고메이 천황의 평소 주장대로 막부에 모든 권한을 넘긴 채 막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관철하고 있었다.

훗날의 메이지 천황은 이미 왕위 계승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어정쩡한 상태였다. 구체적인 변화는 67년 11월 벌어졌다. 바로 15대 쇼군 요시노부(慶喜)가 모든 통치권을 조정에 되돌리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이다. 이 대목을 시점으로 삼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막부는 현존하는 실체였다. 이듬해 1월 3일 왕정복고를 안팎에 선포한 시점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윽고 68년 10월 12일 무쓰히토는 즉위식을 마치고 23일 메이지라는 연호를 개원한다. 바로 메이지유신의 시작이다. 그런데 좌막파(佐幕·막부 옹호파)의 반발은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파란만장한 유신은 시작 또한 이렇듯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다.

한편 유신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사건이 아닌 까닭에 변혁기간으로 따져보자는 논의도 있다. 즉 1858년 미·일 수호통상조약부터 1881년, 즉 메이지 천황이 국회 개설과 국영기업 민영화를 선포한 시점까지로 보자는 것이다(사카노 준지, 오노 겐지, ‘메이지유신 1858∼1881’, 2009).

규슈=조용래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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