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의 외인과 내인… 19세기 서구 열강 선박들 출몰하며 위기감 증폭




메이지유신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1853년 흑선 도래다. 넓은 의미로 근본원인을 따진다면 19세기 전반에 벌어진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와 일본 열도 내부에서 빚어지고 있던 다양한 문제들이 거론된다. 바로 외인(外因)과 내인(內因)이다. 보통은 내부요인이 우선적으로 작동하지만 유신은 외부요인에 촉발된 측면이 더 크다.

외부요인으로서는 이미 19세기 들어 서구 열강들의 선박들이 자주 출몰하면서 위기감을 증폭시킨 데다 40∼42년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아편전쟁을 꼽는다. 막부는 1633년 쇄국령을 발동하고 나가사키를 통해 네덜란드, 중국 등과만 교역했다. 나가사키는 막부의 직할령이지만 유력 번들은 나가사키에 기키야쿠(聞役)라는 정보수집 전담관을 파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사정에 매우 밝았다. 막부를 비롯해 각 번들은 중국이 영국에 유린되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고 그것은 곧 공포로 바뀌었을 터다.

공포는 곧 내부요인으로 전가됐다. 위기감은 낙후된 막부의 역량과 각 번들의 개혁의지를 자극했다. 더구나 막부의 통치력은 제도피로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통치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특히 계속되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흉작 탓에 각 번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 번들은 번정개혁(藩政改革)을 통해 상공업을 장려해 재정을 갖추는 한편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을 중시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번정개혁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서남웅번(西南雄藩), 즉 사쓰마(현 가고시마), 조슈(현 야마구치), 도사(현 고치), 히젠사가(현 사가) 등인데 흔히 이들을 ‘삿초도히(薩長土肥)’라고 부른다. 삿초도히가 사실상 유신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유신과 관련해 기존 막번체제와 교토 조정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조정과 막부는 권위와 권력의 분리구조로 이해된다(마쓰모토 기요하루 등, ‘일본사 7가지 수수께끼’, 1996). 즉 천황의 권위에 의해 쇼군의 권력을 부여하고 쇼군은 천황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틀이다. 권력과 권위의 분리구조를 원활하게 하는 것은 존왕론이다. 백성들에게 임금에 대한 존경을 강조함으로써 천황의 권위를 높이고 그로써 쇼군의 권력기반이 탄탄해지게 된다는 논리구조다. 그러나 막말 막부의 무력화가 심화되면서 존왕이 근왕(勤王)으로 바뀌면서 막부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야마구치·규슈=조용래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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