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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수출에 올인한 中企, ‘쿼터 규제’ 피해 고스란히


中企는 판로 다변화에 한계… 美 수출 못하면 파산 위기
‘3년 평균’ 기준 쿼터 배분 최근 실적 반영안돼 불합리
대기업서 주도 철강협회 쿼터 조절에 소극적 대응… 정부는 “업계 자율적 합의”


미국이 지난 5월 발동한 ‘철강 규제’는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국가의 철강 제품을 적대시한다. 각국에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승인한 ‘25% 고율관세’를 내고 수출하든지, 아니면 기존 관세율을 유지하되 최근 3년간 대미 수출 물량의 70%만큼만 수출하도록 물량 제한을 받는 것이다.

한국은 물량 제한을 받는다. 미 상무부는 올해 한국에 263만1012t의 쿼터(Quota·할당량)를 배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으로 쿼터 중에 벌써 75.7%(199만t)를 수출했다.

철강 제품을 둘러싼 통상분쟁은 국가 간 문제로 보이지만 한국 산업계 내부의 사정이 더해지면서 복잡해졌다. 한국에 배정된 쿼터를 다시 업체별로 나누는 작업은 대기업 철강업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민간협회(한국철강협회)가 주도한다. 2015∼2017년 대미 수출 물량의 70%라는 기준을 업체별로 적용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최근 3년간 실적이 많다가 올해 수주 실적이 없는 업체가 쿼터를 많이 받거나, 올해부터 실적이 급증한 업체가 지나치게 적은 쿼터를 받은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피해 체감도’가 크다. 미국 이외 국가에 수출이 가능한 대기업은 적절하게 수출선을 다변화하고 물량을 나누면 된다. 반면 미국에 ‘올인’한 중소기업은 수가 없다. 철강 쿼터로 미국 수출길이 막힌 한 철강 중소기업 대표 A씨는 “대기업들은 다른 시장에 팔면 되니 이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활로가 전혀 없지는 않다. 다만 ‘바늘구멍’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29일(현지시간) 한국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철강 쿼터를 완화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제품이나 일시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제품은 예외적으로 수입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언뜻 ‘경쟁력’만 갖추면 미국 시장을 다시 뚫을 수 있을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미 상무부에 예외 신청을 할 수 있는 기업은 미국 현지의 수입업체로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심사에 최대 90일이 걸린다. 예외 인정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 기업 가운데 이런 장벽을 넘은 곳은 미국 정밀의료기기업체에 ‘극세강관(주삿바늘)’을 공급하는 중소기업 에스엘테크뿐이다.

손발이 묶인 중소기업이 기댈 곳은 산업부밖에 없지만, 산업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공개한 산업부의 미국 철강 쿼터 관련 민원 내역을 보면 전체 11건 중 4건이 쿼터 배분 문제다. 산업부는 “쿼터 배분 기준은 원칙적으로 업계의 자율적 합의”라며 “내년도 쿼터 배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소량만 허용하는 협상을 해줘도 중소기업이 다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도 안 되면 차라리 25% 관세를 내고 미국에 팔 수 있게 해 달라”고 성토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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