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언 초서·한석봉 서예·유음납량도… 조선시대 서화사 걸작들 30점 선보여



서예가이자 서화수장가인 소전 손재형(1903∼1981)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해방 직전 되사온 일화로 유명하다. 그가 정계에 투신하면서 평생 모은 소장품은 정치자금 밑천을 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세한도를 비롯해 손재형 컬렉션의 상당 부분이 개성 출신의 기업인 손세기(1903∼1983)에게 흘러간 것으로 전해진다.

서강대학교가 ‘고(故) 손세기 선생 기증 서화 특별전’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박물관(관장 정선용)에서 갖고 있다. 손세기 선생은 우리나라에 기부 문화가 생소했던 1973년에 고서화 200여점을 조건 없이 서강대에 기증했다. 조선시대 서화사에 족적을 남긴 이들의 작품을 아우른다. 이번 전시에도 16세기 명필인 ‘양사언 초서’(보물 1624호)를 비롯해 한석봉 김정희 등의 서예 작품, 조영석 윤두서 정선 심사정 강세황 김홍도 김득신 장승업 등의 회화작품을 포함한 30점이 나왔다. 이원복 부산시립박물관장은 “작품만으로 조선시대 서화사를 쓸 수 있는 컬렉션”이라고 평가했다.

출품작 중에는 관아재 조영석의 ‘유음납량도(柳陰納凉圖·사진)’가 특히 조명을 받았다. 버드나무 아래 남자가 웃통을 벗어던지고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담았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조선 중기까지 중국 고사 속 인물이 산수 속에 들어선 산수인물화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 작품이 18세기 서민적인 인물 중심의 풍속화로 나아가기까지 과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서강대 박물관이 오롯이 손세기 컬렉션을 타이틀로 내세워 전시하기는 처음이다. 손세기 선생은 70세를 앞두고 기증처를 물색하던 중 당시 박물관이 없던 서강대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컬렉션이 박물관 건립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 것이다. 기증이 이뤄진 이듬해인 74년에 서강대 박물관이 설립됐다. 그러나 박물관은 지금도 동문회관 건물 6층에 세 들어 사는 처지다. 손세기 컬렉션 전 타이틀을 걸고도 30점만 선보인 것은 장소가 협소한 탓이 크다. 조명과 진열장 유리 등도 전시에 부적합해 학교 측의 지원이 아쉽다. 12월 14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