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미술의 경계에 선 작가, 국내서 첫 개인전

한국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갖는 중국의 실험영화감독 쥐안치. 아라리오서울 라이즈호텔 제공
 
쥐안치의 대표작인 ‘실종된 경찰’의 스틸 이미지. 아라리오서울 라이즈호텔 제공


맨홀 뚜껑을 열고 남자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으로 영상은 시작된다. 그는 지하세계에 33년간 감금됐다 탈출했다. 1983년, 경찰이었던 그는 정부 방침에 따라 춤을 추며 미풍양속을 해친 예술가들을 연행하려다 그들에 의해 역으로 감금당하고 만다. 당시 연행은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지는 끔찍한 ‘하방(下方)’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구금 기간 그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모든 예술 책을 섭렵한다. 이제 지상에 올라와 거꾸로 저명한 예술가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도인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데….

예술이란 무엇인가, 특히 중국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중국의 신세대 실험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쥐안치(43)의 영상 작업들은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그 방법은 때론 코믹하고, 때론 시적이다. 그래서 작품 관람 뒤의 여운이 길다.

이 작품, ‘실종된 경찰’(2016)의 경우 황당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가운데 왕광이, 장샤오강, 팡리쥔 등 지금 중국 미술을 쥐락펴락하는 미술가들이 배우로 등장해 위트를 더한다. 오가는 대화는 시종 미술에 대해 묻고 답하며 둔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라고 믿는 작가는 “단 한 명이 자유롭지 않아도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같은 대사를 통해 은근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염시킨다.

중국 신장에서 태어난 쥐안치는 1999년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이듬해 첫 작품 ‘베이징에는 강풍이 분다’가 제5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발표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영화와 미술의 경계에 선 이 작가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미술 영역에 호출됐다. 아라리오갤러리가 서울 마포구 옛 서교호텔을 개조한 라이즈호텔 내 분점에서 쥐안치 개인전을 갖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거대한 글씨’는 중국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웅대한 스케일로 건드린다. 신장 동부의 거대한 돌산에 새겨진 글자를 대서사시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1968년에 구축된 이 지형물은 글자 하나가 축구장 크기만 해서 처음엔 대평야처럼 보인다. 카메라가 점점 위로 올라가며 부감함에 따라 ‘투쟁을 통해 배우자’ 등 문화혁명 시기의 구호를 새긴 글씨임이 드러난다. 구글 지도를 통해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이 글씨들은 당시 중국 사회주의가 갈망했던 유토피아의 표상이었다. 글씨의 바탕을 이루는 을씨년스러운 돌산의 풍경은 그 과정에서 민중이 감내해야 했던 상처로 읽힌다. 다른 화면에는 ‘68혁명’ 등 같은 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는 정치적 사건의 자료 영상이 흘러 중국의 그 시절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 쥐안치는 ‘출장 중의 시인’으로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분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전시는 12월 9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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