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형통한 사람



본문을 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요셉은 다른 형들의 시기 때문에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창 37:28) 어찌 보면 요셉의 삶은 절망의 구덩이에 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의 삶을 가리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삶이라 말합니다. 오늘은 요셉을 통해 형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형통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비록 요셉이 노예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요셉은 주인의 절대적인 신임과 총애를 받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형통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기에 가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모든 일이 잘 됩니다. 요셉의 환경은 다 변했더라도 요셉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환경과 조건도 하나님과 요셉의 사이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가 답답하고 힘든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함께할 때 삶의 환경이 풀리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인한 형통의 의미가 단순한 문제 해결이나 삶의 편안함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은 그 자체가 큰 복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것이 참된 형통이며 더욱 형통할 수 있는 조건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변함없이 말씀과 연결돼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형통을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충만해 살면 그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며 우리를 형통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왕상 2: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는 자는 현실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되며 죽은 후의 천국을 희망하며 살게 됩니다.

형통은 나를 통해 내 주변이 잘 되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 삶입니다. 성경은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요셉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집에 더 큰 축복을 내리셨고, 보디발의 가정은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형통한 삶의 복은 개인적, 이기적인 차원에서 내가 잘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가 속한 공동체와 직장이 형통해지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세상 속으로 퍼지는 걸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의 형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퍼지길 원하십니다. 힘든 일이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힘을 얻고, 찡그리던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웃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삶의 소망을 되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여러분 뒤에서 일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이 형통한 삶일까요. 성경은 우리의 삶에 비록 여러 문제와 힘든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고,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느끼고 인정하는 것이 참된 형통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진정한 형통의 주인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허대광 목사(분당 성음교회)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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