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갖춘 진취적 여성으로 달라진 옹녀가 전면 나선다

국립창극단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한 장면. ‘변강쇠 타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창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남성’ 변강쇠에만 초점을 맞췄던 옛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신 갈등을 조정하고 희망을 만드는 영웅적 여성 옹녀를 전면에 내세웠다. 국립극장 소속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의 대표 레퍼토리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18일부터 4일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2014년 초연한 이 작품은 창극 최초 5년 연속 공연에 빛난다. 성(性)을 가감 없이 풀어내는 만큼 ‘18금’이다. 하지만 국내외 81회 공연에 걸쳐 3만59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평균 90%에 달하는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창극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에 초청돼 “코믹함과 섹슈얼리티가 조화를 이룬 예술적 힘이 대단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 타령’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옹녀는 본래 수동적이고 비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남자의 씨를 말린 죄로 고향에서 쫓겨난 그녀는 우연히 만난 변강쇠와 신방을 차린다. 행복한 생활도 잠시,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변강쇠는 저주를 받아 죽는다. 초상에 찾아온 유랑민들까지 시체에서 나온 독기로 죽고, 옹녀는 홀연히 사라진다.

창극은 원전의 결말을 완전히 뒤집는다. 옹녀는 변강쇠가 죽고 난 뒤 자신의 연인을 죽게 만든 장승들과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한다. 옹녀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무기 삼아 전국 각지의 장승들을 홀려낸 후, 정념이 일으킨 화마에 휩싸여 불타게 만든다. 그리고 훗날 변강쇠와 사랑할 날을 기약하며,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기로 결심한다.

작품은 이처럼 원작에 짙게 배어있던 가부장적 가치관을 털어내고, 현대인들이 공감할 진취적인 여인상을 제시한다. 무대 위 옹녀는 음녀(淫女)가 아니라 강하고 품위 있는 한 명의 인간이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는 “옹녀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선언할 수 있는 주체적 인간형”이라고 정의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을 통해 기발한 고전 재해석 능력과 뛰어난 연출력을 두루 인정받은 고 연출가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5년간 변화를 거듭하며 밀도감 있는 작품이 됐다”며 “웰메이드 창극에 걸맞게 감정 표현과 이야기 흐름을 템포감 있게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로의 성기를 묘사하는 기물가(己物歌)를 보면 성(性)이라는 게 감추면 음란하지만 솔직하면 성스러워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둘의 진솔한 사랑이 남녀가 반목하고, 아이를 잘 낳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힐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악과 배우들의 호연은 작품에 완성도를 더한다. 음악감독은 소리꾼인 한승석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맡았다. 판소리뿐 아니라 민요와 비나리, 가요 등 극 전체에 다채롭게 배치된 음악은 공연 내내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초연 때부터 매해 농익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맑은 성음의 이소연 단원과 무게감 있는 소리를 자랑하는 최호성 단원이 옹녀와 변강쇠 역을 소화한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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