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맨’ 경탄의 연속… 천재 감독이 선사하는 황홀감 [리뷰]

인류 최초로 달에 간 사나이,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다룬 영화 ‘퍼스트맨’의 클라이맥스 장면.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 달에 착륙한 순간 스크린에 펼쳐지는 비주얼은 경탄을 자아낸다. UPI코리아 제공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 그 사이로 들리는 거친 숨소리. 이내 불안에 휩싸인 남자의 두 눈이 화면에 들어온다. 시험 비행 중인 초음속 비행기가 대기권을 지나 성층권까지 솟구쳐 오르는 극한 상황. 닐 암스트롱(1930∼2012)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퍼스트맨’의 강렬한 시작이다.

영화는 제트기 조종사였던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 1962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뒤 목숨을 건 훈련을 거듭한 끝에 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하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역사적인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이니 만큼 관객들이 모를 리 없다. 더욱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는 수없이 시도돼 왔다. 그럼에도 데이미언 셔젤(33) 감독은 우리의 상상을 또 한 번 뛰어넘고야 만다.

‘위플래쉬’(2015)와 ‘라라랜드’(2016) 단 두 편의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 젊은 감독의 천재성은 이번 신작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질주하는 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전작들과 궤를 같이 한다.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그의 인장은 선명하게 찍힌다.

애초에 셔젤 감독은 우주시대를 연 영웅의 서사 따위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려워하고 때로 좌절하지만 끝끝내 다시 도전하는 인간, 좁게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가장으로서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우주의 거대함과 일상의 평범함이 대조되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기존의 우주 영화들과 또 다른 지점은 그저 광활한 우주를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암스트롱이 우주선 조종석에 앉았을 때 화면은 1인칭 시점을 취한다. 어지럼증이 느껴질 정도로 흔들리는 화면은 마치 관객이 조종실 안에 함께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완벽에 가까운 연출이 긴박감을 극대화한다. 거침없이 돌아가는 계기판 숫자와 암스트롱의 불안한 눈빛이 리드미컬하게 교차된다. 인물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관객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좁은 공간이 주는 갑갑함,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주는 공포감, 마침내 우주공간에 안착했을 때의 황홀함까지.

가장 경이로운 장면은 역시 달 착륙 시퀀스다. 달에 도착한 암스트롱이 회색빛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화면은 65㎜ 아이맥스(IMAX) 카메라로 전환된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 펼쳐지는 광대한 지평선. 그야말로 ‘고요한 바다’의 한가운데 서게 되는 것이다. 저 멀리에는 초승달처럼 푸르게 빛나는 지구가 보인다.

그때 담담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라면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이 빠지지 않았겠으나, 이 영화는 과감히 생략한다. 이미 바닥에 꽂힌 성조기가 배경에 얼핏 잡힐 뿐이다. 그 대신 카메라가 비추는 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을 떠올리며 흘리는 암스트롱의 눈물이다.

영화에는 여러 죽음이 등장한다. 암스트롱과 함께 제미니 프로젝트(유인 우주비행 계획)에 참여했던 동료들이 잇달아 희생된다. 그러나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흐르진 않는다. 오히려 이성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그 안에선 60년대 미국과 소련의 무모한 우주 경쟁에 대한 비판의식이 읽히기도 한다.

암스트롱 역의 라이언 고슬링은 ‘라라랜드’에 이어 셔젤 감독과의 훌륭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하는데, 순간순간 미세하게 움직이는 안면근육으로까지 감정을 전달해낸다. 그의 연기는 141분 내내 극을 지탱하는 힘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그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야 한다는 호평도 나온다. 18일 개봉. 12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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