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여수의 동백꽃

강종열 ‘Camellia’ 캔버스에 유채, 130x162cm, 2015. 뮤지엄 SAN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시인 문정희가 동백꽃의 단호한 꺾임을 노래했다면, 여수 화가 강종열(67)은 그 절정의 순간을 그린다. 붓끝에 물감을 듬뿍 묻혀, 화폭 가득 동백나무를 채운 뒤 탐스러운 꽃을 그린다. 내일이면 그 꽃송이는 땅으로 후드득 직하할 것이다.

가로 1.6m의 그림 10폭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 강종열의 풍경화는 관객이 마치 동백숲을 찾은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캔버스에는 많은 동백나무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화면 가까이 가면 형태는 사라지고, 물감의 자글자글한 물성만 감지된다. 강종열은 동백꽃밭을, 그 푸르름의 현장성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화폭에는 꽃의 꿀을 찾아든 동박새가 등장한다. 여수의 세찬 바닷바람과 한파를 이겨내고 선홍빛 꽃을 피우는 동백숲을 장대하게 담은 강종열의 회화는 그저 감상하는 풍경이 아니라, 실경 속을 걸으며 생명의 에너지를 체험케 하는 풍경이다. 겹겹이 모여 녹색물결이 된 숲, 진초록 잎새와 보색 대비를 이룬 붉은 꽃송이들은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쩌릿쩌릿 보여준다. 화가는 필리핀과 동티모르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한 인물화로도 역량을 떨친 바 있다. 강종열의 동백화는 올해로 개관 5주년을 맞는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SAN(관장 오광수)의 ‘풍경에서 명상으로’전에 출품됐다. 내년 3월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는 자연을 모티프로 오감을 자극하고, 명상을 유도하는 김승영 김일권 오명희 육근병 등 10명 작가의 회화 영상 오브제가 나왔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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