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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한 놈만 팬다



1999년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무데뽀’로 나온 유오성은 패싸움을 할 땐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옆의 놈들이 아무리 나를 때려도 난 한 놈만 죽을 때까지 팬다. 그러면 나중엔 살려 달라고 한다.” 점잖게 표현하자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고 공포감을 활용한 것이다. 동네 양아치긴 하지만 그는 싸움 전략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이 분명하다. 혹시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양아치일 수도 있겠다.

국제정치학 용어인 ‘미치광이 전략’은 한 놈만 팬다는 전략과 맥락이 비슷하다. 미친 척하고 행동하고 주장하면 진짜 실행에 옮길지도 모른다는 겁을 먹고 상대방이 덤비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치광이처럼 언동을 하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어서 많은 것을 얻어내는 협상 전술이기도 하다. 1990년 대 초반부터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아온 북한의 행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대중 전략 또는 과격한 국내 정책을 설명할 때 자주 쓰여 낯설지 않은 용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지난해 도발과 맞대응으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 행위가 궁극적으로 대화를 위한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분석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미치광이 전략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냉전 시절에 만든 개념이라고 한다. 이들이 충동적이고 강경 대응을 일삼아 진짜 핵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공포를 소련과 위성국가들에게 준 것이다. 미국을 자극하지 말라는 뜻이겠다. 실제로 닉슨은 베트남전 당시 전략핵폭격기를 소련 국경 부근까지 정기적으로 출격시켰다. 소련을 위협, 북베트남을 움직여 미국과의 협상장으로 나오게 해 종전을 하고자 했던 전략이다. 훗날 닉슨 정권이 무너지며 미국은 치욕적인 패배를 했지만, 당시 이 전략은 주효해 북베트남이 협상장으로 나왔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엊그제 유튜브에 ‘한 놈만 팬다’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냈다. 첫 회 ‘한 놈’의 대상으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선택했다. 댓글은 ‘좋아요’보다 비판이 많다. 센 사람 패서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전략인지, 걸리면 죽는다 식의 미치광이 전략으로 여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인지, 아니면 본인 사망 기사 외엔 무조건 언론 노출을 원하는 정치인 본성을 드러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회 건수를 보니 노이즈 마케팅이 일단 먹혀든 것 같다. 물론 밑진다면 시작도 안했겠지만.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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