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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자발적으로 노출 영상 올리는 아이들…‘좋아요’ 누르며 성폭력 조장하는 사회



중학생 A양은 올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를 찾았다. 자신의 은밀한 신체부위가 담긴 영상이 SNS에 유포되면서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 해당 영상은 자신이 스스로 찍어 올린 것이어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A양은 “SNS에 (성적) 영상을 올리는 사람이 계속 보였고 그 밑에 ‘예뻐요’ 등 댓글이 달리며 인기를 얻었다. SNS를 하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A양의 사례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길들이기·가해자가 자신보다 어리거나 미숙한 사람에게 접근해 신뢰관계를 형성한 뒤 촬영물을 받아내는 것)으로 분류된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연약한 미성년자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한사성은 13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발표회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를 통해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자신의 성 관련 영상을 찍어 유포하는 행위가 최근 1∼2년 새 급증했다”며 그루밍 사례가 온라인상에 만연해 있음을 우려했다. 지난해 한사성의 미성년자 피해 상담 건수는 총 40건으로 전체(206건)의 20%에 달했다. 서랑 한사성 활동가는 14일 “올해 통계는 아직 집계하지 못했지만 지난해보다 늘었다”며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이용률이 늘고 영상 채팅 애플리케이션 사용이 더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리아 한사성 활동가는 “아동·청소년이 직접 제작·유포에 동의했더라도 ‘이렇게 해야 사랑받는다’는 욕망의 구조를 만든 어른들과 사회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사이버 성폭력 피해 사례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동이 스스로 찍은 것을 유포할 경우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처벌받는다.

한사성은 ‘제작형 피해촬영물’ 문제도 새로운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사이버성폭력 근절을 강화하자 불법촬영물처럼 연출해 영상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리아 활동가는 “성매매 여성에게 빚 탕감을 해주겠다며 유포 동의까지 얻어 영상을 찍는 사례도 있다. 해당 여성은 형식적으로 동의했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불법 촬영물을 ‘무기’로 여기는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실제 지난 7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얘(연인) 놓치기 싫어서 성관계 영상 몰래 찍어둔 게 있다”며 “배신하면 그걸로 좀 놀려주려고 (한다). 얘 내 손 안에 있는 거 맞지?”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 논란이 된 ‘여고 화장실 불법 촬영물’ 사건과 관련, 남성들이 법망을 피해가는 방법을 공유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이들은 “게릴라 판매할 때 겨우 샀다” “난 ○○거래 했다. △△거래는 추적이 훨씬 쉽다” 등 정보를 공유했다. 리아 활동가는 “많은 남성들은 사이버 성폭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권력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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