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없었다면 서울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T6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건축문화제 2018’을 찾은 시민들이 서울의 33개 산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서울 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권현구 기자
 
서울건축문화제의 인기 프로그램인 ‘건축문화투어’. 서울시 제공
 
대학생팀이 서울의 서른네 번째 산을 용산공원 안에 조성하자며 제시한 ‘서울산’의 내부 단면. 서울시 제공


요즘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엔 억새가 한창이다. 18일까지 ‘서울억새축제’가 이어진다. 하늘공원 아래 서울월드컵경기장 옆에는 문화비축기지가 있다. 산업화시대 석유를 비축했던 기지를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곳이다. 문화비축기지에서는 지난 4일부터 ‘서울건축문화제 2018’이 열리고 있다. 올해로 10년째 이어지는 서울시 주최 건축문화축제로 건축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좀 더 깊이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다. 10개의 전시 프로그램과 8개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오는 28일까지 진행된다.

지난 11일 오후 문화비축기지 내 서울건축문화제 전시장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혼자, 혹은 소규모로 와서 차분하게 둘러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도 눈에 띄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평일엔 하루 300여명, 주말엔 하루 900여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문화비축기지에 들어서면 전면에 커다란 원통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석유를 비축했던 6개의 탱크 중 가장 규모가 큰 T6. 카페로 꾸며진 T6 로비를 지나 계단을 딛고 한 층 올라서면 서울건축문화제 전시장이다. ‘주제전’을 비롯해 ‘서울시 건축상 수상작’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전’ ‘건축스토리텔링전’ ‘서울건축문화제 10주년 기념전’ 등 10개의 전시가 한 공간 안에서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건축물이 아니라 서울의 지형을 부각한 전시다. ‘한양山川(산천) 서울江山(강산)’이라는 올해의 주제에 맞춰서 서울의 산과 4대 지천, 한강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서울이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겠다는 의도는 전시장 초입에 자리한 주제전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제전에서는 건축물 사진이나 모형이 하나도 없다. 서울의 지형을 보여주는 지도와 영상이 전시 공간을 채우고 있다.

서울에는 33개의 크고 작은 산이 있다. 산이 이렇게나 많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평면지도에서는 산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제전에서는 음영기복도를 사용해 그린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음영기복도는 지형의 표고에 따른 음영효과를 표현함으로써 2차원 표면의 높낮이를 3차원으로 보이도록 만든 지도와 영상을 말한다.

건물이나 도로 대신 산과 천, 강만 표시된 서울 지도를 보면 서울이 다르게 보인다. 산의 도시라는 걸 느끼게 된다. 서울은 그동안 무서울 정도로 확장됐지만 여전히 산들을 경계로 그 안에 오목하게 자리하고 있다.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지워졌지만 산이나 천, 강은 남았고 그것이 도시와 건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상으로 보여주는 조선시대 지도는 과거의 한양 역시 산의 도시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주제전을 나오면서 ‘우리가 그동안 서울을 말할 때 산이라는 존재를 빼놓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기옥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은 ‘한양산천 서울강산’을 올해의 주제로 잡으면서 ‘서울에 산이 많고 천이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에 여러 차례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서울의 지형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걸 확인하고 주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다. 본인도 주제전을 준비하면서 서울에 산이 이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을 정도라고 한다.

벽에 걸린 한 서울 지도는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는 지점들을 표시해 놓았다. 또 다른 서울 지도에는 서울시 건축상 수상작들과 건축스토리텔링전 응모작들이 위치한 지점들을 찍어 놓았다. 흥미롭게도 이 지점들은 강북권, 그 중에서도 산 주변 구릉지에 몰려 있다.

이 총감독은 “우연한 발견이지만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며 “천과 강 주변은 다 개발됐고, 서울에서 건축이 가능한 땅은 산 주변뿐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해석했다. 이것은 앞으로 서울에서 건축이 자연이나 지형과의 관계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시 건축상 수상작들을 모아놓은 공간에서는 ‘작은 건축’이 대세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979년 첫 서울시 건축상 금상 수상작은 새마을회관이었다. 이후 여의도 MBC 사옥, 힐튼호텔, 을지로 2가 재개발 사업, 영등포 민자역사, 성락침례교회, 종로타워, 서울월드컵경기장 등이 수상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작은 건축물이 수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올해에도 14개 수상작 중 상당수가 개인주택이나 동네 도서관 등 작은 건축이다.

전시된 수상작 사진들을 보면 공교롭게도 산을 배경으로 한 경우가 많다. 서울의 의미 있는 건축이 변방이라는 강북권의 산 주변에서 일제히 등장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전에서는 서울의 서른네 번째 산을 상상한 ‘서울산’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군부대 이전으로 반환되는 용산공원 안에 인공 산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구현한 작품이다. 이 팀은 ‘왜 산을 만드는가?’에 대해 “산의 지형을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의 개발 방향과 정반대의 방법으로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접근”이라며 “서른네 번째 산을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은 산을 포함하여 만들어진 역사와 문화, 자연의 회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에서 산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도 그들은 하나의 답변을 제시했다. “서울의 과잉을 산이 비워줄 수 있습니다. 서울의 결핍을 산이 채워줄 수 있습니다.”

‘한강의 간극을 잇는 우리의 방법 산산조각’이란 대학생 작품도 참신하다. 잠원한강공원을 대상으로 인공호안을 철거하고 폐콘크리트를 재활용해 수중 복합공간을 조성한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특히 인공호안을 자연호안으로 복원하고 그 자리에 백사장을 다시 만든다는 구상이 표현된 그림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전시장 맨 끝에서 열리는 한강상상전에서는 VR(가상현실)을 통해 서울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VR은 상공에서 촬영한 영상을 제공하는데, 도시와 자연지형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성산대교 상공 영상은 도로와 자동차들로 차단된 한강변 모습을 보여준다. 탄천 주변을 보면 주차장들이 가득하다. 중랑천 합수부는 네 겹의 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다 합치면 20차선이 넘을 듯하다. 차도들이 빽빽한 강변과 천변 풍경을 바라보다보면 ‘사람이 다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서울이 품고 있는 산과 천, 강의 존재를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서울 다시보기’ 같은 효과를 준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여러 질문들을 던지는 전시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산이 없었다면 서울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동행했던 서울시 주택건축국 공무원은 “건축물이 주인공이 아닌 건축문화제는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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