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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표현 써가며 한국에 제동 건 트럼프

사진=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간 대등한 외교관계에선 사용하지 않는 ‘승인(approval)’이란 단어를 써가며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 완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은 그동안 여러 채널로 한국 정부에 제재 유지 필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이번처럼 표현이 강한 적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설화법을 감안하더라도 외교적 결례이자 주권 침해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허리케인 ‘마이클’ 관련 대책회의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일부 제재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질문에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당신과 접촉했느냐’는 질문에 재차 “그렇다.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고 했다.

이 발언은 한국시간으로 11일 오전 1시쯤 나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전날 밤 늦게까지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24 조치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가 취소한 직후다. 외교부는 국감 도중 강 장관의 발언 취지를 미국 측에 실시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보고받지 않은 상태에서 제재 질문이 나오자 즉흥적으로 답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 사이에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모든 사안은 한·미 간 공감과 협의가 있는 가운데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한·미 간 ‘협력’ ‘공조’ 등 통상 쓰는 표현이 있는데 요청에 대한 허락의 의미가 담긴 ‘승인’ 단어를 쓴 건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어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지만 한국 정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어떤지는 짐작해볼 수 있다”고 했다.

외교가에선 북·미 간 밀고 당기기가 벌어지는 민감한 시기에 강 장관의 5·24 조치 해제 발언이 한·미 의견차를 표면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많다. 대북 제재는 미국이 대북 협상에서 끝까지 쥐고 가려는 카드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국제사회가 제재에 있어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데, 핵심 당사국인 한국이 다른 얘기를 하면 미국의 협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 전날인 지난달 17일 강 장관과의 통화에서 남북 군사 합의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데 대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과의 군사 분야 소통 창구는 국무부가 아니라 한미연합사령부”라며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이 ‘한·미 간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입장을 갈음하겠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통화가 있기 전 군사합의 관련 보고서를 받았고, 강 장관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국무부에는 정치·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국이 따로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폼페이오 장관은 관련 내용을 확인한 뒤 강 장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남북 정상회담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폼페이오 장관이 남북 철도 연결 연내 착공에 대해서도 항의했다는 보도에 대해 “대북 제재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지혜 강준구 이상헌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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