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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이대 총장 “이대·김일성대·베이징대 3자 콘퍼런스 이끌 것”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이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총장 접견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유라씨 부정입학으로 혼란스럽던 학교를 수습한 김 총장은 “당시 일은 정보 공유나 논의의 장이 크게 열려 있지 않은 데서 비롯된 문제였다”며 “이제 ‘나를 따르라’는 영웅주의적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라고 본다. 소통과 자율을 통해 리더십보다 팔로어십이 되게끔 노력한 게 취임 후 지난 1년 반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화여대와 북한 대학과의 교류를 중국 베이징대를 통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김일성종합대나 평양과학기술대 학생들, 베이징대 학생들과 만나 한·중·조 3자 형식의 콘퍼런스가 가능하겠지요. 베이징대 린젠화(林建華) 총장에게 중간 역할을 요청했더니 굉장히 흥미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이화여대는 1990년대부터 옌볜대와 김일성대의 여성학자들과 학술회의를 열고, 98년 대학원에 북한학과를 개설하는 등 북한에 대한 관심과 교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총장 접견실에서 만난 김혜숙(64) 총장은 “비정치적인 학문 교류의 차원에서 대학이 북한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필요가 있다”며 “그 과정에서 이화여대가 여성 특유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발휘해 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특혜 입학 파문 이후 지난해 5월 이화여대 131년 역사상 처음으로 직선제 총장으로 선출됐다. 김 총장에게 북한 대학과의 교류, 미투와 여혐 등 남녀 갈등 구도 해소, 대학교육의 미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만난 사람=권혜숙 문화부장

-이화여대가 북한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가 궁금하다.

“탈북자의 70∼80%가 여성들이다. 이화여대가 그들을 교육하는 데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화여대의 정체성인 기독교 정신 외에도 김옥길 선생이나 윤후정, 장상 전 총장 등 여성 리더 중에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1년 간 탈북자들을 위한 시민 인문강좌에서 강의를 하면서 탈북민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평양과기대도 이화여대에 교류를 요청했다고 들었다.

“지난여름 평양과기대 전유택 총장을 만났다. 간호학과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문제로 도움을 청했는데, 우리가 건물을 지어줄 상황은 아니었지만 아동 영양실조나 보건, 의료 부분은 이화여대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였다.”

-북한에도 여성학 학자가 있고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다니 의외다.

“재미있는 게 북한 장마당은 다 여성들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유교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서열 때문에 남자가 물건을 파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거다. 유교의 가부장제 시스템이 작동해서 여성들이 나가서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한다. 김일성대 철학과 출신으로 청진의대 교수를 하다가 탈북한 현인애씨를 북한학과 초빙 교수로 임용했는데, 여성학적 관점에서 주체철학을 비판적으로 보는 작업을 해보자고 설득했다.”

-이화여대에 탈북학생은 얼마나 되나.

“현재 40여명이 재학 중이다. 학교에서 탈북학생들을 위해 ‘어깨동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생들끼리 수강 신청하는 법, 프레젠테이션 하는 법 등 학교생활을 돕게 한다. 예전 1학년 세미나에서 맨 앞줄에 초롱초롱한 눈의 학생이 있었는데, 2주 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탈북학생이었다. 학교에 오면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두렵다고,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해서 삼겹살을 먹이며 며칠을 설득했다. 탈북한 지 몇 년 안된 학생들은 심리상태가 말도 못할 정도라서 이렇게 공황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그 학생은 다행히 지난 8월에 졸업한다며 인사를 왔다.”

-많은 이들이 대학의 위기를 말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정부가 대학 정원감축과 구조개혁을 주도하는 상황이다.

“굉장히 큰 숙제다. 대학의 소멸, 즉 가장 빨리 사라질 교육기관으로 대학을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의 MIT나 프린스턴대 등이 참여하는 해외 무료 온라인 교육 시스템의 경우 인공지능으로 마치 조교가 케어하듯 작동되는 상황까지 왔다. 양질의 무료 콘텐츠가 있는데 과연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래서 대학이 크게 양분되리라 생각한다. 하나는 정말 1대 1, 소위 명품이 희소성을 기반으로 값을 높여 받는 것처럼 이 학교에 가면 나의 개별적인 특성이 잘 포착되고 발현돼서 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소수의 대학과 아주 대규모의 온라인 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대학들로 나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여대의 미래는 어떨까.

“언젠가 학부모들에게 ‘이대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대학’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인한 문명 변화로 여성이 소프트파워를 주도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적 의식을 가지고 여성의 경험에 기반해 교육 내용과 교육 환경을 구성할 수 있는 곳이 여대다. 이화여대가 그런 차원에서 준비가 잘 돼 있다. 이화여대는 96년 여대로는 세계 최초로 공과대학을 세웠고, 현재 이대에서 가장 큰 단과대가 공대다. 이공계 여성 역량 강화라는 취지를 우리가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똑똑한 여학생일수록 여대에 와야 한다고 말한다. 남녀공학에 흩어져 있는 것보다 집단적 힘을 갖고 있는 게 여성의 앞날을 개척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이화여대 같은 큰 집단이 산처럼 버텨주고 있으면 상당한 변화와 힘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투나 여혐 문제가 뜨겁다. 여대의 총장이자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어떻게 보고 있는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매우 상징적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인데, 남성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타자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참 어렵다. 역지사지하는 교육, 예컨대 젊은이들이 노인 체험을 하게 한다든가, 남자가 여자 체험을 하고 여자가 남자 체험을 하게 한다든가, 교육과정 안에서 그런 역할극과 훈련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해야 하는 건 너무 식상하고 진부해서 아무 의미 없는 말처럼 들리는 ‘상호존중’이다. 모두 분노에 차있는 사회가 되면서 그 분노를 약자에게 발산하고 있다. 남편은 갑질 때문에 쌓인 분노로 아내를 때리고, 아내는 아이를 학대하고…. 아동 학대가 지난 몇 년간 10배가 넘게 뛰었던데, 그게 우리의 피폐한 삶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최근 신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임명됐다. 교육의 미래를 위한 고언을 한다면.

“정부는 교육의 공공성을 확대하려 하는데, 거의 90%에 달하는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을 가는 상황에서 그 목표가 그렇게 어필한다고 보지 않는다. 제 세대에는 한해에 100만명이 태어났지만 지금은 30만명 남짓하다. 100만이면 거기서 줄을 세우고 고르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30만이면 모두 1등으로 키워야 한다. 중국은 300만씩 태어나는데, 우리 학생들을 일당백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 30만을 어떻게 고르느냐에 온 사회가 달려들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학 입시를 폐지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꼴찌 하던 아이가 미국 가서 잘한다는 얘기가 무슨 뜻일까. 1등 할 수 있는 아이들을 ‘너는 꼴찌야’라면서 꿀밤을 먹이니, 2등부터는 전부 열등감을 갖는 사회가 된다. 교육은 미래 사업이다. 미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고, 미래 인재를 만들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김 총장은

김혜숙 총장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당시 학생들이 점거한 본관에 경찰이 들이닥치는 영상이 나오자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됐다. 총장 선거 때는 95%에 달하는 학생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화여대 영어영문학 학사 △이화여대 기독교학 철학전공 석사 △미국 시카고대 철학 박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 △대학윤리위원회 위원장 △대학교육협의회 이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제31대 위원

정리=강경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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