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클래식 음악계 심장부 찌른 ‘변방의 고수’


 
최근 클래식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휘자인 테오도르 쿠렌치스. 소니뮤직코리아 제공
 
쿠렌치스(오른쪽)가 지난달 20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리더할레에서 열린 남서독 방송 교향악단(SWR) 수석 지휘자 취임 연주회를 마치고 환호하는 관객에게 인사하는 모습. SWR 홈페이지 캡처


현재 세계 관현악계의 초점은 두 명의 지휘자에게 쏠려 있다. 한 명은 지난 8월 25일 베를린 필 음악감독으로 취임 연주회를 가진 키릴 페트렌코이며, 다른 한 명은 9월 20일 남서독 방송 교향악단(SWR) 수석 지휘자로 취임한 테오도르 쿠렌치스이다.

1972년생(심지어 같은 2월생이다)이며 러시아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두 지휘자의 배경과 경향은 사뭇 대조적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베를린 필에 입성한 페트렌코는 정통의 수순을 밟아왔다. 오스트리아로 이주해 빈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수의 오페라극장에서 유명 악단들을 지휘하며 유럽 중앙 무대에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쿠렌치스는 시작부터 달랐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는 20대에 러시아로 유학한 뒤 귀화한 케이스다. 페트렌코가 95년 지휘자로 데뷔할 무렵 쿠렌치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해 일리야 무신을 사사하기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2004년 자신의 악단을 직접 창단했다. 이것이 바로 무지카 아테르나 앙상블 및 합창단으로 그동안 라모,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등을 쿠렌치스와 함께 음반으로 선보였다. 한국에도 올해 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음반이 소개돼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2011년 그는 무지카 아테르나를 이끌고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인 페름 오페라극장의 예술 감독으로 부임했다. 일개 사설 악단이 수장과 더불어 오페라극장의 상주 악단으로 동시에 입성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쿠렌치스에 대한 유럽의 반응은 호불호가 선명하게 엇갈린다. 자극적일 만큼 극단적인 강약의 대조와 절제된 비브라토, 분석적이기보다는 직관과 주관에 의존하는 급진적인 해석 때문이지만, 변방 출신의 이방인이라는 것도 작용한다. 중부 유럽에서 정통 코스를 밟아온 페트렌코와 달리 러시아에서 자신의 악단을 이끌며 시작한 쿠렌치스의 경력을 일부 유럽 보수파들은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 그의 카리스마가 자신의 악단을 넘어서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악단에도 유효할 것인가 의구심을 품는 이들도 많다.

쿠렌치스는 이번에 독일 상설 악단 SWR의 수장으로 부임하면서 이 질문들에 답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는 그동안 빈 심포니,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유럽 악단들을 객원지휘하며 스스로의 리더십을 실험해 왔다. 결과는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진보적 성향의 빈 콘체르트하우스는 그를 상주 예술가로 초청해 ‘쿠렌치스 사이클’이란 프로그램을 벌써 몇 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시즌 객원지휘를 했던 SWR이 그를 수석지휘자로 불러들인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빈 심포니 객원지휘 후 단원들 사이에서 쿠렌치스에 대한 반응이 극단적으로 엇갈렸던 것과 달리,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바덴바덴-프라이부르크 방송교향악단이 통합돼 재창단된 SWR은 이전에 로저 노링턴, 프랑수아-자비에 로트 등 현대와 시대주의를 결합한 절충주의 해석을 선호하던 지휘자들과 동고동락한 악단이다. 이 악단은 쿠렌치스의 날렵한 해석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최적의 동반자로 거론돼 왔다.

지난달 20일 쿠렌치스의 슈투트가르트 취임 연주회에 이어 25일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열린 취임 기념 순회 콘서트를 감상했다. 한 시간이 넘는 말러 교향곡 3번을 연주하며 SWR은 쿠렌치스의 디테일한 지시에 열성적이면서도 민감하게 따라와 지휘자가 악단 전체를 성공적으로 장악했음을 보여줬다. 매진된 객석의 무대 몰입도 또한 높아서 클래식 음악의 중심부인 빈에 그의 열성팬층이 이미 탄탄하게 형성됐음을 알 수 있었다. 방송 교향악단의 이점을 살려 미디어를 이용해 지휘자가 직접 작품을 해설하는 ‘쿠렌치스 랩(LAB)’도 그의 음악적 영지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의 예상과 달리 쿠렌치스 신드롬이 덧없는 신기루로 곧 사라져버릴 확률은 낮아 보인다.

빈=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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