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유감(遺憾) 표명은 사과, 사죄가 아닙니다



“피카소의 걸작들을 감상한 유감을 말해봐.” “지난여름 더위를 버텨낸 가로수 이파리들 색이 하나둘 변하는 걸 보니 가을날 유감이 더욱 새롭네.”

“북한 외무상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은 뜻밖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게 유감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왜 악담을 하고 다녀.”

앞의 두 문장에 든 유감은 ‘有感’입니다. ‘느낌, 즉 와 닿는 게 있다’는 말이지요. 뒤 두 문장의 유감은 ‘遺憾’인데, ‘마음(성)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는 뜻입니다.

遺憾. 좀 애매하게, 때론 주객이 전도돼 쓰이기도 하지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고의든 실수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이들이 툭하면 던지는 말입니다. ‘아쉽다’ 정도의 느낌이 든 이 말을 ‘사죄’라도 하는 양 입 밖에 내는 것이지요. 사실 遺憾은 뭔가를 잘못한 쪽에서 하는 말로는 적절치 않고 피해를 본 쪽이 해야 어울리는 말입니다. 위 ‘유감을 표합니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는 무슨 뜻인지 흐리멍덩한 말로 상황을 벗어나려는 이들의 습관화된 수작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이러다 遺憾이 잘못해 놓고 면피하는 데 쓰는 말로 굳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예산정보 유출’을 두고 ‘합법’ ‘불법’이라며 싸움을 합니다. 남을 탓할 자격이 되는지, 스스로 거리끼는 바는 없는지 자기를 돌아보긴 했을까요. 정말 遺憾입니다.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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