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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와 자취] 개혁·개방 이끈 ‘베트남의 덩샤오핑’ 잠들다

도 므어이 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1996년 6월 수도 하노이에서 개최된 8차 당대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AP뉴시스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 ‘도이머이(쇄신)’의 주역이자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도 므어이 전 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1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

베트남뉴스통신(VNA) 등 현지 언론은 2일 1991∼97년 베트남 권력서열 1위 공산당 서기장을 역임한 므어이 전 서기장이 전날 밤 하노이의 108군병원에서 타계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하노이에서 태어난 므어이 전 서기장은 19세 때 베트남 공산당의 전신인 인민전선운동에 뛰어들었다. 본명은 ‘응우옌 주이 꽁’이지만 프랑스군에게 체포됐다가 탈출하는 등 혁명 전사로 이름을 날려 ‘열 번 탈출했다’는 뜻의 ‘도 므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므어이 전 서기장은 전임자였던 응우옌 반 린 전 서기장이 시작한 ‘도이머이’를 적극 추진해 베트남 경제건설의 초석을 다졌다. 상무부 장관과 부총리 및 총리를 거쳐 91년 서기장에 오른 그는 국유기업 민영화와 외국인 투자 확대를 실시했다.

또한 중국(91년) 한국(92년) 미국(95년) 등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도이머이 덕분에 베트남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뤘고, 그에게는 ‘베트남의 덩샤오핑’이란 별명이 생겼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로 도이머이를 추진한 베트남을 꼽기도 했다.

므어이 전 서기장은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한국-베트남 수교를 이끈 데 이어 95년 베트남 최고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했다.

특히 그는 베트남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상황을 면밀히 공부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 방문 당시엔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 ‘자본주의 꽃’이라는 주식시장을 도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증권거래소가 물심양면으로 도운 덕분에 베트남은 5년 만인 2000년 7월 호찌민 주식거래센터 문을 열게 됐다.

아주대병원 신경외과 교수팀은 2012년 베트남 정부 요청으로 호찌민을 방문해 척추질환을 앓던 그를 치료하기도 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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