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가구는 예술품인가 가구인가

관세청이 그동안 면세 통관됐던 디자인 가구에 대해 면세 대상인 예술품이 맞는지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고지하면서 미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디자이너 샬롯 페리앙과 장 푸르베가 협업한 책장, 안토니오 치테리오가 디자인한 의자, 조지프 월시 작품인 다이닝 테이블. 소더비 홈페이지 등 캡처


미술계가 ‘디자인 가구 세금 폭탄’ 공포로 술렁이고 있다.

발단은 지난 6∼7월 관세청으로부터 날아든 고지서 한 장이다. 옥션과 갤러리, 컬렉터 등 수십 군데에 배부된 안내문에는 면세 통관시켜준 수입 디자인 가구가 예술품인지 가구인지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가구임에도 세금을 내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자진 신고하라는 일종의 통첩인 셈이다.

관세청의 조치는 정부가 앞으로는 ‘예술 가구’에도 세금을 매기겠다는 신호탄을 쏜 것으로 해석이 되며 미술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A갤러리 관계자는 30일 “5년 전 통관된 것도 소명하라니…”라며 “일단 찔러나 보자는 식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번 조치는 돌발적인 측면이 크다. 사치성 물품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개별소비세법(옛 특별소비세법)에 근거해 정부가 ‘고급 가구’에 과세해온 시점이 1977년부터이기 때문이다. 또 점당 500만원, 세트당 800만원 기준으로 초과분에 대해 20%(농어촌특별세 등 포함 시 28%)의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매겨온 것은 2006년부터다. 관세청 관계자는 “통관 시 예술품이라는 이유로 면세 혜택을 받아놓고 실제 가구로 쓰는 물량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안내문을 받아든 옥션과 갤러리 등은 펄쩍 뛰고 있다. B갤러리 관계자는 “다리 달리면 다 의자냐. 몰라도 너무 모른다. 과거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을 일반 TV상품으로 간주해 과세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출신 산업디자이너 론 아라드(67) 작품의 경우 의자 하나가 6억원대를 호가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요즘에는 건축이나 디자인도 순수 예술로 자리매김해 감상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처사라고 미술계는 입을 모은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이 디자인 가구를 컬렉션하고, 크리스티·소더비 등 메이저 옥션에서는 디자인 가구가 소장가치를 인정받으며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은 “상품처럼 찍어내는 디자인 가구라면 몰라도 빈티지 가구는 에디션 3∼6개라 희소성이 있다. 어떻게 가구처럼 쓸 수 있겠냐”며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에 물을 담을 수 있으니 그릇이라고 세금 매기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미술계는 “탁상행정으로 예술 가구 과세가 이뤄질 경우 미술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달 초 서울옥션에서 실시한 제5회 블랙랏미술품 경매에서 전에 없던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500만원 이하 가구 4점은 모두 낙찰이 됐는데, 추정가 500만∼800만원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 안토니오 치테리오(68)의 의자만 유찰된 것이다.

통관 자체가 힘들어질 경우 외국 유명 디자이너 가구의 국내 전시가 위축될 수밖에 없어 궁극적으로 한국의 디자인 예술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술계의 반발 움직임이 감지되자 과세 당국도 움찔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예술품인지 가구인지 구별하는 것에 난점이 있다”며 “미술계 의견을 취합해 세법 시행령 개정을 건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옥션 최윤석 상무는 “미술관 소장 및 전시 이력 등이 예술품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