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나의 악보를 만드는 것 같아 좋다”


 
제17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인 오민 작가의 개인전 ‘연습곡’의 설치 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피아노 연주자는 스포츠 선수와 유사해요. 국가대표 선수가 선수촌에 들어가듯 연주자도 자신만의 연습실에서 혹독하게 연습을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도 근육과 관절을 정교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훈련이 불가피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래봤자 과거의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 뭐예요.”

오민(43·사진) 작가는 예원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피아노를 전공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 시절 시각디자인을 복수 전공했는데, 내친김에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석사를 했다. 그러나 상업미술의 길을 걷지 않았다. 유학 시절 눈뜬 영상미학에 매료돼 순수미술 작가가 됐다. 미술계에서 제법 묵직한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올해 받았으니 외도해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수상을 기념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최근 작가를 만났다. 그는 “미술가는 ‘지금 여기’에서 자체적으로 나의 악보를 만드는 것 같아 좋다”며 기뻐했다.

전시 제목 ‘연습곡’은 그의 청소년기를 지배해온 피아노 연습을 떠올리게 한다. 두 개 영상 채널이 ‘ㄱ자’로 마주한 게 얼른 눈에 들어온다. 각각 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한 쪽은 전체 모습을, 다른 쪽은 얼굴 표정만 부각시켜 나온다. 바닥에는 작은 모니터 5개가 흩어져 있다. 모니터를 무용수가 보는 악보, 즉 무보(舞譜)라 생각하면 된다. 모니터에는 ‘눈앞의 숲을 보시오’ 같은 텍스트, 혹은 도형으로 표시된 지시가 있다. 이를 따라 여성이 연기하는 모습이 한 채널에 나온다. 그런 동작을 할 때는 특유의 표정이 있는데, 그 표정을 다른 채널 속 여성이 상상해서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동작마다 특징화된 표정을 연습곡 치듯 꾸준히 연습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작가는 “피아노를 연습할 때 완벽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가능한 것처럼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그 과정은 인간의 강인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불안하면서도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작가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근원적인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예측하고, 계획하고, 훈련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렇게 퍼포먼스를 찍은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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