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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나는 레지스탕스다



익명의 기고가 백악관과 워싱턴 정가를 들쑤시고 있다.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레지스탕스 일원이다’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도덕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이라고 공격한다. 언론들이 앞다퉈 제각각 2∼5명의 고위 관리를 기고자로 압축해 보도하자, ‘나는 아니다’고 적극 해명하는 이도 나타나고 있다. 현대 미국 정치에서 사례가 거의 없던, 재미있는 현상이다. 하기야 보기 드문 대통령이 출현했으니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겠다. 그저 미국 정치의 새로운 현상에 또 하나의 목록이 추가됐다고나 할까.

레지스탕스 하면 떠오르는 건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저항군이다. 독일 점령군에 대칭되는 이 단어의 어감은 열악한 상황에서 목숨 내놓고 저항하는 것이다. 프랑스뿐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에서 격렬한 무장 저항이 있었고, 독일은 잔인하게 보복했다. 영국 특수부대에서 훈련받은 체코 저항군 7명이 1941년 독일 치하의 프라하에 잠입, 게슈타포 수장인 히틀러의 오른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수류탄으로 공격해 사망케 했다. 게슈타포는 민간인 1만3000명을 체포·고문해 5000명 이상을 처형했다. 이들이 피신한 것으로 의심된 마을의 주민 수백 명을 집단 학살한 뒤, 아예 구조물을 모두 갈아엎어 지도에서 사라지게 했다. 레지스탕스의 저항과 점령군의 대응은 이런 관계다.

익명의 고위 관리는 자신을 저항군이라고 표기했다. “대통령은 미국의 건강을 해롭게 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 보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맹세한 것” “행정부 내에 국가를 우선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조용한 저항이 있을 것” “모든 시민이 나서야 진짜 변화가 만들어질 것” 그가 쓴 문구들이다. 자극적이다. 우리 정치 식으로 표현하자면 정권 내부에 ‘반(反)트’ 진영이 선동적인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주요 관점은 공화·민주당 간 싸움만이 아니다. 공화당 또는 보수 진영 내에서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공화당원·보수주의자들과 기존 워싱턴 질서를 혐오하는 친(親)트 성향의 이들이 벌이는 결전이다. 공화당 후보들 간 싸움은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다는 게 그 동네 선거 전략가들의 분석이다. 그 결과가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의 승패보다 트럼프의 2년 뒤 재선에 더 결정적일 수 있다고 한다. 레지스탕스의 ‘조용한 저항’ 선언, 이거 미국판 친트와 반트의 대대적인 권력 싸움이 시작됐다는 신호 아닌가.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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