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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길과 서애로의 변신, 아스팔트 걷어내니 거리가 달라졌다

낙원상가에서 인사동네거리까지 120m가량 이어지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4길은 지난 6월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고급 화강석 보도블럭으로 포장된 후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낙원동과 익선동을 오가는 새로운 동선이 형성됐다. 이병주 기자
 
지난해 연말 양방향 차로를 1차로 일방통행으로 축소하고 보행로를 배 이상 넓힌 중구 필동 서애로의 모습. 달라진 서애로는 낡고 오래된 동네에 새로운 활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인사동길은 서울에서 대표적인 걷기 좋은 길로 꼽힌다. 2001년에 일찌감치 차도를 줄여 보행 위주 도로로 개편하고 보행전용거리로 운영한 덕분이다. 인사동길에서는 차들이 걷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 지나간다.

최근 인사동에 또 하나의 걷기 좋은 길이 형성되고 있다. 인사동 네거리를 중심으로 인사동길은 남북으로 통하는데, 동서축 길이 새로 활기를 띠고 있다. 낙원상가에서 인사동 네거리까지 120m 길이의 인사동4길이 정비된 후 일어난 변화다.

보행자·자동차 공용도로인 인사동4길은 지난 6월 검은색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화강석으로 새로 포장됐다. 걷기에 편안하고 100년 이상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급 보도블록이다. 지난 6일 인사동4길에서 만난 상인들은 하나같이 “길이 환해지고 넓어졌다”며 좋아했다.

달라진 것은 길의 외양만이 아니다. 길의 성격이 변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그동안은 아스팔트길이라서 차로라는 개념이 강했다”면서 “도로를 보행용 보도블록으로 바꾸고 나니까 보행로라는 성격이 두드러지면서 차들이 조심해서 지나다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늘 자동차가 도로 중앙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길 가운데로 활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걷기 편한 길이 생기니까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인사동에서 낙원동, 익선동을 오가는 새로운 동선이 형성되고 있다.

한 상인은 “그동안에는 인사동이라고 하면 인사동길 주변이 전부였다”며 “인사동4길이 걷기 좋은 길로 바뀐 다음에는 이쪽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장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사동길도 예전에는 차들이 쌩쌩 지나가던 길이었다. 지금은 주말에 차를 완전히 막아도 상인들이 불평을 하지 않는다. 걷기 편하니까 사람들이 더 많이 찾고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이다. 종로구에서는 인사동4길이 걷기 좋은 길로 개편되면서 인사동길에만 의존해온 인사동 상권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구역, 어린이나 노인 등 교통약자 보호구역, 전통과 문화가 있는 구역 등을 ‘보행환경개선지구’로 선정해 차도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는 식으로 도로를 개편하고 있다. 인사동4길을 포함해 19곳이 걷기 좋은 길로 개편됐다.

중구 필동 서애로도 보행환경개선지구 사업으로 도로의 모습이 확 달라진 경우다. 지하철 충무로역 1번 출구로 나와 대한극장을 지나 우측으로 돌면 남산으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서애로가 펼쳐진다. 임진왜란 시절 영의정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국난 극복에 힘쓴 류성룡(1542∼1607)의 호를 딴 이 길은 350m정도로 짧다.

서애로는 지난해 연말 양방향 차로를 1차로 일방통행으로 축소하고 보행로를 배 이상 넓혔다. 도로에서 차로와 보행로의 비중이 역전됐다. 이전에는 차로가 7이고 보행로가 3정도 됐다면 지금은 보행로가 7이다. 전봇대 등 보행을 가로막는 물건들도 싹 치웠다.

서애로 주민들 모두가 길의 변화를 반기는 건 아니다. 부동산 주인은 “보행로가 넓어지니까 길 전체가 환해지고 예뻐졌다”고 호평했지만, 재활용업체 업자는 “차가 드나들기 어려워져 장사에 방해를 받는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달라진 서애로가 낡고 오래된 이 동네에 새로운 활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애로에서 20년 넘게 고깃집을 하고 있다는 김모씨는 “길이 바뀐 후 동네에 변화의 기운이 느껴진다”면서 “외부에서는 서애로를 잘 모르는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멋진 가게들도 생겨나고 있어서 지역 상권이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얘기했다.

중구 관계자는 “주변에 동국대가 있고 충무로와 남산, 한옥마을과도 인접한 서애로 일대를 홍대 앞처럼 대학문화거리로 만들고 있다”면서 “서애로가 걷기 좋은 길로 바뀌면서 이 지역 변화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 100m, 200m를 걷기 편한 길로 바꾸는 일은 사소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잘 만들어진 보행로가 불러오는 변화는 때론 놀라울 정도다. 인사동길이 그렇고, 신촌의 연세로가 그렇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처음 시장이 된 2012년부터 ‘걸을 수 있는 도시’ ‘보행친화도시’를 내걸고 도심에 걷는 길을 꾸준히 늘려왔다. 박 시장이 말하는 ‘서울을 바꾸는 10년 혁명’에서도 걷기는 키워드 중 하나다.

박 시장이 추구해온 보행정책은 ‘걷는 도시, 서울’이란 구호에 집약돼 있다. 서울시는 2016년 ‘걷는 도시 서울 종합계획’을 마련해 차선 줄이기, 보행전용거리 확대, 차 없는 거리 운영 등 35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에는 서울로 7017 프로젝트나 녹색교통진흥지역 지정, 도심 도로공간 개편 등 도시의 틀을 바꾸는 대담한 기획들도 포함돼 있다.

걸을 수 없는 도시라면 좋은 도시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어 다닐 수 없다면 그 도시가 아무리 크고 화려하다고 해도 행복한 도시, 동경하는 도시가 되진 못 한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보행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걷기는 도시를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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