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악착 같이 쌓아 올린 생존의 기술, 작품이 되다

권용주 작가가 지난 7월 말 개인전 ‘캐스팅’이 열린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작품이 쓰레기 구조물에 포장 천막을 씌운 뒤 그 전체를 석고로 형을 뜬 ‘포장 천막3’이다. 최종학 선임기자
 
2010년 서울 종로구 인사미술공간에서 선보인 ‘부표’. 작가 제공
 
2011년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전시한 ‘폭포’. 작가 제공


포털사이트에서 조회수 높은 아이템 중 하나가 미담이다. 누군가를 돕는 이야기는 팍팍한 세상을 사느라 체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같기 때문에 모두가 열광한다. 이를테면 ‘할머니 폐지 수레에 닿은 여대생 천사의 손길’ 같은 영상이다. 폐지 줍는 할머니의 수레가 넘어지자, 마침 이를 목격한 여대생이 할머니를 도와줬다는 단순한 스토리인데 공감도가 높다. ‘폐지 줍는 사람들’은 밑바닥 삶의 보통명사다. 모두가 도와야 할 대상이라는 게 통념이다. 그들을 위해 제동장치가 있거나 가벼운 알루미늄 재질로 된 수레를 제작해 지원해주는 지방자치단체나 대기업도 있다.

젊은 작가 권용주(41)는 그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예술적인 시선으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쓰레기 더미가 아니다. 그것들이 쌓아올려진 구조다. 가능한 한 많이, 그러면서 안전하게 쌓아올린 ‘생존의 구조’는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견고하다.

그 절묘함에 탄성을 내질렀던 권용주를 만났다.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 ‘캐스팅’이 열릴 때였다. 어라, 이번엔 180도 다르잖아. 번번이 작품이라며 내놓았던 지저분한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깔끔하고 희디흰 석고상들이 진열돼 있었다.

작가는 쓰레기 구조물을 예전처럼 포장 천막으로 둘둘 말거나 덮은 뒤 통째 석고로 캐스팅했다. 쓰레기 구조물에 석고물을 뿌려 겉틀을 만들고, 안쪽 면에 다시 석고를 채워 형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그러곤 그 큼지막한 석고 덩어리를 설치하기 위해 다리를 박았는데, 마치 좌대에 올린 조각상 같다. 남루는 그렇게 조각이 됐다. 서구 콤플렉스가 뒤섞여 찬탄의 대상이 됐던 비너스 조각상 같은 자태로 말이다.

작가로서 권용주의 이력은 쓰레기 작업에서 출발했다. 강태공처럼 긴 기다림 끝에 낚아 올린 발견이다. 2002년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한 그는 7∼8년을 백수로 지냈다. 조급증에 뭐라도 만들어 개인전을 열 법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기에 ‘알바’를 하며 작가로서는 무위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그의 눈에 불쑥 들어온 게 전봇대였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작업실 앞 전봇대. 밤사이 몰래 버린 쓰레기가 아침마다 새로 쌓이는 곳이었다.

“누군가 바퀴 빠진 등받이 의자를 거기 버려요. 다음날엔 낡아빠진 트렁크가, 그 다음날엔 신문지에 둘둘 만 깨진 액자가 얹히는 식입니다. 누군가는 찢어진 우산을 그 사이에 쓱 찔러놓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형태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러다 누군가 쓸 만한 뭔가를 빼 가면 그 구조가 와르르 무너지지만 이내 뭔가가 또 쌓여있지요. 이런 풍경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며 만들어지는 그 조형 자체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걸 골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폐지 줍는 사람들의 리어카도 당연히 눈에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폐신문, 박스 등이 악착스레 쌓아올려진 구조가 재미있었다.

“그들의 조형 감각을 체득하고 싶었어요. 무겁고 판판한 것은 아래, 부피가 크고 가벼운 것은 위에 두는 방식도, 어디에서쯤 노끈을 묶는 게 좋은지, 어떻게 묶는 게 좋은지 따라 하다 보면 그들의 손이, 몸이 가는 방향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벼랑 끝 삶에서 익힌 ‘축조의 미학’뿐 아니라 그런 풍경 뒷면에 어린 삶의 에너지, 삶의 정서까지 조각으로 형태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봇대 앞 쓰레기 더미는 작품이 됐다. 자신의 작품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철학도 만났다. 일본의 적군파 출신 영화감독인 아다치 마사오가 남긴 문장을 발견하곤 무릎을 쳤다.

“사소하게 지나치는 도시의 풍경 안에도 권력이나 힘의 구조가 담겨 있다.”

2010년 첫 개인전 이래 이른바 쓰레기 가설 미술은 ‘부표’ ‘폭포’ ‘석부작’ 등 시리즈를 달리하며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부서진 의자, 바퀴, 빨래 건조대 등 버려진 물건들을 쌓아올리고, 천막을 쳐서 날아가지 않게 묶은 뒤 ‘부표’라고 이름 붙였다. 그들이 도시라는 바다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부표처럼 보여서였다. 이어서 나온 폭포 시리즈는 천막이나 비닐을 씌운 쓰레기 구조물 위로 인공폭포처럼 물이 넘쳐 내리게 한 설치 작품이다.

“1990년대 도시 곳곳에 인공폭포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조야한 구조물인데도 20년 넘도록 유행하며 지자체가 돈을 쏟아붓는 겁니다. 에라, 도시에 어울리는 진짜 인공폭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쓰레기 구조물에서 솟구치는 물줄기는 민중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가시화한 것 같다. 이에 반해 석고 캐스팅은 쓰레기 구조물을 전쟁 영웅처럼 당당하게 석고 조각으로 만들었으므로 그들의 삶에 바치는 ‘헌사’ 같다.

작가는 석고가 덧입혀짐으로써 예전 작품이 가졌던 날 것의 정서, 거기에 스몄던 삶의 에너지가 사라질까 경계한다. 하지만 석고상은 천막 끝에 풀어진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캐스팅됐다. 밑바닥 삶의 모든 것이 ‘순간 응결’돼 오롯이 보존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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