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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해 발굴’ 손잡은 남북, 문제는 중국의 몽니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순국한 뒤 일본에서 발행된 것으로 알려진 엽서. 엽서에는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미를 감추려는 의도에서 안 의사는 흉한(兇漢)으로, 사살에 사용된 권총은 흉기(凶器)로 표시돼 있다." 성균관대 제공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뒤 러시아 군인에게 붙잡혀 이토를 노려보는 장면을 묘사한 가로 39.3㎝, 세로 53.8㎝ 크기의 석판화. ‘이토공 조난지도(伊藤公 遭難之圖)’라는 제목의 이 석판화는 그해 12월 1일 일본 출판사인 도쿄 박화관이 만들어 공개한 것이다. 보도용 판화로 추정된다. 이토가 세 발의 총탄을 맞고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안 의사를 쳐다보는 것으로 표현된 부분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왼쪽 위 작은 얼굴은 이토. 고판화박물관 제공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뒀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고향에서 장사를 지냄)해 달라.”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유언은 108년 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10년 만에 다시 추진하기로 한 안 의사 유해 발굴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본격적인 발굴에 앞서 “발굴하려는 지역에 안 의사가 묻혀 있다는 정확한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중국 당국을 설득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안 의사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여전한 미스터리다.

둥산포 공동묘지 발굴 추진

현 정부는 북한과의 안 의사 유해 공동발굴을 추진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는 안 의사 유해발굴의 첫 단추를 풀기 위한 조치다. 중국 당국은 북한과의 합의 없는 남측 단독의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승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남측의 단독 유해 발굴을 허용할 경우 황해도 해주 출신의 안 의사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는 북한 측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북한 측 협조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31일 “북한과의 공동 발굴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로 안다”며 “조만간 북한과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14일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북한과 공동사업으로 안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내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차원에서 이를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3차 정상회담에서 남북 공동발굴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둥산포(東山坡) 공동묘지에서 안 의사 유해를 발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은 안 의사가 수감됐던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旅順)감옥으로부터 동쪽으로 1.2㎞쯤 떨어져 있다. 뤼순감옥의 사형수를 묻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매장 추정지 3곳 중 둥산포 공동묘지에 대한 조사만 이뤄지지 않았다.

나머지 2곳의 매장 추정지에 대한 추가 발굴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다. 뤼순감옥 뒤편의 위안바오산(元寶山)은 한·중이 북한과의 협의를 거쳐 2008년 3∼4월 공동발굴을 진행했다. 이곳은 뤼순감옥 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의 증언을 토대로 매장 추정지로 지목됐지만 유해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현재 이 지역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마지막으로 고려인 매장 추정지로 파악됐던 감옥 인근 야산은 2008년 10월 중국 측 단독 발굴이 이뤄졌다. 이 지역은 뤼순감옥 박물관 주차장 경영자의 증언을 근거로 발굴이 진행됐던 곳이다. 발굴 작업 이후 이곳은 다른 공사장에서 파낸 흙더미 등을 쌓아 놓는 매립지로 활용됐다. 정부 관계자는 “흙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발굴 조사를 더 진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감옥서(監獄署) 묘지’ 자료 확보될까

가장 큰 문제는 중국 당국의 승인을 얻어내는 일이다. 중국 측은 북한과의 합의뿐 아니라 매장 추정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자료를 제출하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현재까지 정부는 둥산포 공동묘지를 안 의사 매장지라고 볼 수 있는 결정적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공신력 있는 기록은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당시 조선통감부 통역이 작성한 ‘사형집행 시말 보고서’다. 여기엔 ‘오후 1시에 감옥서의 묘지’에 안 의사의 관을 묻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중국 측은 ‘감옥서 묘지=둥산포 공동묘지’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자료라고 판단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이곳이 문물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는 이유로 안 의사 매장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료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아직까지 이런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중국 측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2014년부터 이 지역에 대한 조사를 중국 측에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이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유해 발굴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중국에 제안한 것은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법이다. 이는 지표면에 전자기파를 쏘아 땅 밑 상태를 확인하는 탐사 방식이다. 2001년 1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둥산포 공동묘지에 있는 일반인 묘지와 유적 등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인데도 중국 측이 난색을 보이는 태도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2016년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 불거진 뒤로는 안 의사 유해 발굴 추진은 완전히 중단됐다.

정부는 조만간 국가보훈처와 외교부, 통일부 간 협의를 거쳐 안 의사 유해 발굴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보훈처는 최근 외교부에 ‘중국 측 협조를 받아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또 일본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사형집행 관련 공식 문서를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안 의사 후손의 유전자(DNA)는 확보돼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안 의사가 순국한 지 108년이나 지났지만 소량의 유해 확보만으로도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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