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란 이런 것”… 대학로 빛내는 권성덕



“여러분! 이리하여 로마 제국은 멸망했습니다.”

57년차 배우 권성덕(77·사진)의 단단한 목소리가 객석으로 울려 퍼지며 연극 ‘로물루스 대제’(연출 김성노)는 끝을 맺는다. 장장 140분에 걸친 시간 동안 그가 소화한 문장은 400여개. 복잡한 동선과 세밀한 감정표현이 필요한 대사 등으로 인해 젊은 배우도 버거워할 대작을 고령의 그는 연륜이 묻어나는 몸짓과 힘 있는 목소리, 섬세한 연기로 집중력 있게 끌고 나간다.

지난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로물루스 대제’가 선을 보이고 있다. 원로 연극인들의 업적을 기념하는 축제인 ‘늘푸른연극제’의 3회 행사 중 하나다. 1970년 국내 초연 당시 권성덕을 주연급 배우의 반열에 올린 작품이다. 스위스 출신의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이 연극은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가 주인공이다. 서기 476년 3월 15일과 그 다음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 연극은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멸망하기까지의 하루를 그린다.

‘로물루스 대제’는 작가 뒤렌마트 특유의 비판의식과 사회 풍자가 담겼다고 평가받는다. 제국의 멸망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인물이 바로 ‘대제’라 불리는 황제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무위(無爲)의 정치를 한다. 게르만족의 침공에 로마인 모두가 공포에 떠는 상황에도 황제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기르는 ‘닭들’ 뿐이다. 황제는 로마가 지금까지 숱한 잘못을 저질렀고, 이는 멸망으로써만 구제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로마의 영광을 볼 때 그 이면에 숨은 폭력과 억압을 보는 인물이다. 황제의 생각치고는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섬세하면서도 대담하며 낭만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연극도 그렇다. 때로는 현실과 동화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현실의 이면을 파고들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6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국립극단 단장과 한국연극협회 이사로, 또 ‘수전노’ ‘베니스의 상인’ 등의 명작들로 연극인들과 관객, 그리고 사회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던 그가 ‘로물루스 대제’를 택한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아 있다. 2016년 식도암으로 잠시 무대 활동을 쉬다 2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그는 아직 투병 중인데도 끊임없이 연극을 고민하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찾아 간 대기실에서 그는 모서리 곳곳이 해진 대본을 보는 기자에게 말했다.

“연극이야말로 정말 친절하게 만들어야 해요. 연극을 잘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모두 즐길 수 있게끔 말이에요. 은퇴작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이번 공연이 연극을 꿈꾸는 젊은 후배들과 사람들에게 연극의 본모습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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