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의 재발견 기대만큼 주제의 모호함 아쉬움

전남 목포 옛 신협 건물에서 열린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작가인 쿠르드 난민 출신 바크타야르 카프탄이 28일 이라크를 탈출했을 때 넘었던 거대한 바위산을 형상화한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전남 진도의 운림산방 전시 전경.


지난 28일 전남 목포 남농로 목포문화예술회관 로비. 먹을 먹인 듯한 시커먼 고목이 쌓여 있고, 꽃이 그려진 수묵화가 플래카드처럼 내걸렸다. 제1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이하 수묵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장 들머리는 이런 설치작품을 통해 ‘수묵=고루’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애쓰는 듯했다. 1일 공식 개막하기에 앞서 다녀온 프리뷰 현장이었다.

목포와 진도, 두 도시에 분산 개최되는 수묵비엔날레는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동양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면접장’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지역 주민의 혈세 4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행사다. 하지만 주제의 모호함, 큐레이터 늑장 선정, 지역성의 덫 등 장애 요인에 얽혀 눈에 띄는 작품조차 묻히고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김상철 총감독(동덕여대 교수)이 내건 주제는 ‘오늘의 수묵-수묵의 어제에 묻고 오늘에 답하다’이다. 주제가 명징하지 않다 보니 소주제도 갈 길을 잃었다.

목포문화예술회관만 보자. 전시장별로 ‘자연의 서정을 재현하다’ ‘기운의 가시화’ ‘수묵표현의 진폭’ ‘서체적 수묵추상화’ 등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분류 기준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탓인지 왜 저 작품이 저기 걸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서체적 수묵 추상화 코너에 구상 작품들이 버젓이 걸리기도 했다. ‘동양 3국의 수묵해석’은 눈길을 끄는 주제였지만, 어떤 기준에서 모았는지가 분명치 않았다. 해외 작가는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에 ‘수묵의 여러 표정들’이라는 문학적이지만 애매한 제목으로 섬처럼 떨어져 진열되고 있었다.

‘두루뭉수리 디스플레이’가 된 것은 큐레이터가 너무 늦게 선정된 탓도 있다. 목포의 본전시를 담당한 박영택 큐레이터(경기대 교수) 등은 5월 말 기자간담회 때 발표되지 않았었다. 처음부터 감독과 함께 일해야 할 큐레이터가 막판에 부랴부랴 합류했다는 얘기가 된다.

진도 전시는 지역 미술단체 소속 작가들인 정명돈, 박주생씨가 큐레이터를 맡았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의 작업실로 그의 후손인 이른바 허씨 화가들의 요람이 된 ‘운림산방’ 내 2개 미술관 등 3곳에서 열렸다. 이곳 소주제도 ‘요산요수’ ‘산산수수’ ‘산수’로 엇비슷하다. 특히 큐레이터가 자신이 기획한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는 흔치 않는 현상도 벌어졌다.

수묵비엔날레 전체 참여 작가가 약 266명(국내 209명, 해외 57명)으로 지나치게 많다. 국내 작가 비중이 압도적인 점도 국제적 행사인 비엔날레 성격과 맞지 않다. 원조격인 광주비엔날레의 올해 참여 작가는 165명 중 외국작가가 125명이다.

한국 작가 과다 현상에 대해 비엔날레 관계자는 “여기에 끼지 못하면 지역 미술 판에서 행세하지 못한다는 지역 작가들의 정서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강원국제 비엔날레 감독을 역임한 홍경한씨는 “비엔날레는 세계 작가를 모아놓고 미래 미술에 대해 고민하는 현장”이라며 “작가 선정에서 엄격함이 없다면 결국 ‘지역 잔치’라는 오명을 듣게 된다”고 지적했다.

수묵이라는 매체 특성 탓에 글로벌 확장성에 한계를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답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행사의 일환으로 인천아트플랫폼 관장 출신의 이승미 큐레이터가 기획한 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 참여 외국 작가들은 새로운 감각을 보여줬다. 이들은 한 달간 목포에서 체류하며 생전 처음 쥔 먹과 붓, 한지를 가지고 ‘인왕제색도’를 연상시키는 적묵의 바위산, 한지를 이용한 인체 조각, 수묵의 그래픽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한국화 작가 K씨는 “본전시 주제로 예컨대 ‘난민’ 등 사회 이슈가 되는 담론을 던져줘서 국내외 작가들이 매체를 초월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나머지는 특별전 형식으로 수용했다면 실험적 성격도 살리고 지역 화가들의 전통 수묵화도 보여주는 ‘윈윈’ 전시가 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10월 31일까지.

목포·진도=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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