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 닭과 선술집? 70년대 아방가르드를 만나다

‘오리 작가’로 불려온 이강소 작가의 이면인 1970년대 실험미술이 갤러리현대 개인전 ‘소멸’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75년 프랑스 파리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닭 퍼포먼스와 71년 제2회 AG전에서 처음 소개된 ‘여백(갈대)’. 갤러리현대 제공


이 놀라운 광경을 보시라. 요즘엔 전통시장에서도 보기 힘든 닭을 갤러리에 풀어놓았다. 닭도 놀란 듯 마당을 나온 암탉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얼차려 자세로 가만히 있다.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이강소(75) 개인전 ‘소멸’ 기자간담회장. 이날 전시에는 덜 알려졌던 다양한 설치 작품이 나와 ‘오리 작가’ ‘회화 작가’로 불려온 작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식시켰다.

작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오리를 연상시키는 추상적 형상의 단색화로 대중에게 작가적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시간을 거슬러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청년 이강소가 선보였던 행위예술과 개념미술, 설치작품이 재연됐다. 70년대 한국 미술 현장에서 뜨겁게 활동했던 ‘아방가르드 작가 이강소’를 불러낸 셈이다.

닭 퍼포먼스는 작가가 75년 프랑스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해 화제가 됐던 ‘무제-75031’을 재연한 것이다. 퍼포먼스를 기록한 흑백 사진도 함께 진열돼 그때를 증언한다. 전시 제목 ‘소멸’은 73년 작가의 첫 개인전에 소개됐던 작품 제목이다. 생성했다가 소멸하는 자연의 질서, 시간과 존재에 대한 체험을 주제로 제작해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아우른다.

작가는 60년대 말 신체제 그룹을 결성하며 실험미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71, 72년 실험미술의 본산이던 ‘아방가르드협회(AG)’ 그룹전에 참여했고 73, 74년에는 대구현대미술제를 기획하며 전위 미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60년대 미국에서는 추상미술이 퇴조하는 가운데 전통적 장르인 회화와 조각을 넘어서면서 그것이 갖는 상업성을 혁파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그때 탄생했던 퍼포먼스, 개념미술, 대지미술 등이 일본을 거치지 않고 직수입돼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줬던 것이다.

첫 개인전인 명동화랑 전시장에 차렸던 ‘선술집’, 갈대를 흰 석고와 시멘트로 고착시켜 상실과 죽음의 이미지를 전달하려했던 71년 작품 ‘여백’ 등이 흥미롭다. 멍석 위에 쌓아둔 사과도 사먹을 수 있는데, 이는 74년 대구의 ‘한국실험미술작가’전에 처음 나왔다.

이번 전시는 광주 부산 등지에서 다음 달 일제히 개막하는 비엔날레 관람 차 방한하는 국제미술계 관계자를 겨냥한 측면이 크다. 양찬제 이사는 “구미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현대미술사의 뿌리인 70년대 실험미술이 주목받고 있다”며 “일본의 실험미술 운동인 모노하(物派)가 서양에서 인정받았던 것과 달리 한국은 이제 재조명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반 관람은 오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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