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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읽은 판결문 “주님 앞에 자신의 죄 드러내기 꺼리는 건…”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든지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삶을 혼란과 무질서에 송두리째 맡기면 은총을 거역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506호 법정. 김연학 부장판사(형사합의31부)는 어려운 법률 용어 대신 주일 예배 설교에서 들을 수 있는 말로 가득 찬 판결문을 읽어 내렸다. 피고인석에는 서울 서초구 S교회 박모 목사가 서 있었다. 그는 지난해 4월 교회 성도이자 조카딸인 A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박 목사는 선고 주문 낭독을 들으며 고개를 떨궜다.

김 부장판사는 “불이 난 외양간에 있는 소를 대피시키려면 여물통을 엎어야 한다. 안 그러면 소는 불에 타죽는다”며 “하나님도 우리를 죄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할 때 그렇게 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영혼을 어지럽히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주님 앞에 나와서도 죄를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은 원수의 짓”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재판 내내 조카딸을 성폭행하려고 한 게 아니라 평소 앓던 증세로 실신해서 쓰러진 것일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김 부장판사는 “하나님이 간음한 자, 살인한 자, 맹세와 저주까지 하면서 스승을 모른다고 세 차례나 부인한 자를 용서했듯이 당신(박 목사)을 용서하겠지만 문제는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우리”라면서 “악에 송두리째 우리를 내맡긴다면 주님께 돌아오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또 “만일 피고인이 유죄이고 오늘 재판으로 인해 (잘못에서) 돌이킬 수 있다면 재판부로서는 더 이상 다른 재판을 하지 못하더라도 이 재판에서 충분히 그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선고 주문을 마무리했다.

법원은 이날 박 목사에게 징역 3년에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을 선고했다.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S교회에서 25년간 시무했다. 앞서 A씨가 고소하자 상대를 무고로 고소했으나 증거 불충분 이유로 ‘혐의 없음’ 처리됐다. 친족 강간미수와 무고 혐의로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이날 1심 재판을 받았다.

구자창 이가현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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