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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인간의 사랑과 자유 의지는 무엇인가

언덕 위에 남녀 한 쌍이 서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신작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는 위기에 몰린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사랑의 의미와 자유의지의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픽사베이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




여성을 오직 자궁을 가진 생식 도구로만 본다고 설정했던 ‘시녀 이야기’(1985),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로 살인범의 심리를 추적한 ‘그레이스’(1996), 80대 노파의 회고록에 공상과학(SF)소설을 얽은 부커상 수상작 ‘눈먼 암살자’(2000)…. 가장 위대한 현존 작가로 꼽히는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79·사진)의 주요 작품 목록이다.

애트우드가 여기에 기상천외한 블랙코미디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The Heart Goes Last)’를 더했다. 경제 붕괴로 혼돈에 빠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젊은 부부 스탠과 샤메인이 겪는 고통과 위기를 작가 특유의 신랄함과 경쾌함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로맨스, SF, 코미디, 스릴러가 긴밀하게 결합돼 장르 분류 자체가 매우 난해하다.

인권과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뤄온 작가는 신작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 가족의 붕괴, 통제 사회, 기술의 윤리, 페미니즘 등 여러 가지 사회 이슈를 담고 있다. 소설 속 부부는 일자리와 집을 잃고 비좁은 자동차 안에서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내 샤메인은 남편 스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야. 우리가 집을 잃었고, 차에서 잡을 자고 있을망정. …더욱이 당신은 포기하지 않았잖아. 적어도 일자리를 찾는 중이라고.”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생활고는 갈수록 심해진다. 남편은 돈을 얻기 위해 피를 팔고 아내는 도박을 할 생각까지 한다. 그래도 샤메인은 말한다. “우리한테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어.”

둘은 어느 날 컨실리언스 마을에서 진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감옥 모델 ‘포지트론 프로젝트’ 광고를 본다.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부부는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기 위해 이 마을로 떠난다. 마을 주민들은 한 달은 집에서 지내며 감시인으로 살고, 다음 한 달은 형무소에서 죄수로 산다.

주민들은 안락한 집과 일상을 보장받는 대신에 모든 행동과 자유는 철저히 통제받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형무소에 있는 동안 그들의 집에서 살면서 물건을 공유하는 ‘대체인’이 지정된다. 이 부부에게도 대체인 맥스와 재스민이 지정된다. 스탠은 자신의 집에서 그들이 어떻게 생활할지 상상하고 아내와 재스민을 비교하면서 점점 대체인에 대한 성적인 상상에 빠져든다. 샤메인은 맥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줄 섹스 로봇 제작, 기억 조작, 장기 밀매 등이 이뤄진다. 거대한 음모 아래 샤메인은 남편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스탠은 아내 샤메인의 기억을 조작하는 일에 가담한다. 샤메인은 이곳에서 자기 얼굴을 빼닮은 섹스 로봇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누군가의 주문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기술 발달로 사랑과 욕망, 기억까지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기술이 인간의 감정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 기술이 만들어낸 감정도 사랑이 될지, 인간이 선택한 사랑은 우연에 불과한 것인지. 유머와 풍자로 그린 미래 상황 설정에 쿡쿡 웃음이 나다가도 그 세계가 너무나 생생하고 암담하다는 사실에 공포감이 든다.

애트우드는 냉소와 조롱으로 근미래를 비판하면서도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간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는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흥미로운 설정, 치밀한 심리 묘사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작가는 인간의 사랑과 자유 의지에 대해 묻는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아닌가 하고.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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