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사진과 여동생 번갈아보며 “피는 못 속여”

오랜 기다림 끝에 상봉한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20일 북한 금강산호텔 테이블에 둘러앉아 만찬을 즐기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만찬 때 나온 대동강맥주와 음식. 종이에 메뉴도 상세히 적혀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만찬내내 음식 덜어주며 서로 챙겨주기에 분주
92세 오빠 만난 85세 동생 “오빠 만나려고 오래 살았다”


60여년 만에 혈육을 마주한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단은 북측이 주최한 환영만찬을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박용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만찬에서 “혈연의 정이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이 뜻깊은 상봉은 피는 물보다 진하며 한 핏줄을 나눈 우리 민족은 둘로 갈라져서는 살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는 철의 진리를 더더욱 가슴 깊이 새겨주는 소중한 화폭”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국통일과 민족의 융성번영을 실현하는 길은 민족공동의 새로운 통일강령이며 투쟁기치인 판문점 선언을 철저히 이행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아직도 수많은 이산가족이 남북으로 흩어져 가족의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고령 이산가족들이 살아있을 때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언제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북측은 만찬 메뉴로 팥빵, 닭튀김, 밥조개깨장무침, 청포종합냉채, 돼지고기 완자탕, 생선튀김 과일단초즙, 소고기다짐구이, 버섯채소볶음, 오곡밥, 얼레지토장국, 수박, 단설기, 은정차(茶) 등을 내놓았다. 북측 관계자는 “영양학적으로 고려해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만찬장에서도 반세기 넘게 떨어져 있던 이산가족들은 서로를 챙겨주기에 분주했다. 남측의 김한일(91) 할아버지는 만찬 내내 북측 여동생 김영화(76)씨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려고 애썼다. 자신의 팔이 닿지 않는 음식은 동행한 아들에게 부탁했다. 영화씨는 오빠의 보살핌이 싫지 않은 듯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안종호(100) 할아버지와 유관식(89) 할아버지도 북쪽의 딸이 건네준 닭튀김을 밝은 표정으로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앞서 열린 첫 번째 단체 상봉은 상봉장 전체가 울음바다였다. 북에 남겨 두고 온 두 여동생 영숙(79) 광숙(65)씨를 만난 문현숙(91) 할머니는 동생들과 처음 만나 “왜 이렇게 늙었느냐, 어렸을 때 모습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웃으며 운을 띄웠다. 하지만 이내 “광숙이 넌 엄마 없이 어떻게 시집갔니? 엄마가 몇 살 때 돌아가셨니, 너 시집은 보내고 가셨니?”라고 물으며 끝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김춘식(80) 할아버지를 만난 북쪽의 두 여동생 춘실(77) 춘녀(71)씨도 “오빠, 어떻게 이렇게 만날 수 있느냐”며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오빠는 눈물을 그치지 않는 두 여동생을 향해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어머니가 춘자(춘실씨의 옛 이름) 춘녀 보고 싶어 정말 가슴 쓰려 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92세인 신재천 할아버지는 여동생 금순(70)씨와 동생이 선물한 어머니 사진을 번갈아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이) 딱 이 모습이다. 피는 못 속여”라며 “진작 서로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어머니 아버지한테 밥 한 그릇 못해드린 게 평생 마음에 걸렸는데, 너를 보니 마음이 놓인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신 할아버지는 금순씨 아들에게 “앞으로 10년 살면 그 안에 만나게 될 거야. 엄마 모시고 건강하게 살면 만날 거야”라고 당부했다.

북쪽에 사는 김유덕(85) 할머니는 오빠 김달인(92) 할아버지를 보자 “오빠 만나려고 이렇게 오래 살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 할머니는 오빠의 학창 시절 증명사진을 꺼내 보이며 “오빠 사진을 내가 이렇게 한참 보면서 언제나 만나볼까 매일 그리워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산가족들은 첫날부터 작별의 순간을 걱정했다. 남측 이관주(93) 할아버지는 방북 전 기자들과 만나 “내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에 만나고 나면 내가 죽을 때까지 못 보는 기야”라며 “이거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분단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라며 울먹였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최승욱 이형민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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