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 줘 고맙다”… 68년 만에 70대 두 딸 만난 99세 어머니의 눈물

남측의 92세 이금섬 할머니가 북에 사는 71세 아들 이상철씨를 20일 북한 금강산호텔 연회장에서 만나 얼굴을 감싸 안고 있다. 6·25 피란길에 생이별한 아들과 60여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99세 한신자 할머니가 전쟁 때 북에 두고 온 두 딸의 손을 부여잡자 딸들이 오열하는 모습.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하얗게 센 머리 위로 중절모자를 쓴 이금섬(92) 할머니가 20일 북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이 할머니는 6·25전쟁 때 헤어진 아들 이상철(71)씨를 보자마자 거침없이 다가가 “상철이야, 상철이 맞니”라며 부둥켜안았다. 6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할머니는 세 살배기 아이를 대하듯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아들의 볼을 부비고 손을 쓰다듬었다.

이 할머니는 전쟁통에 갓난아기였던 딸을 등에 업고 피난길에 올랐다. 남측으로 내려오던 중 피난 무리가 갈리면서 남편, 아들과 생이별했다. 상철씨는 이 할머니에게 사진을 한 장 건넸다. 생전 남편의 모습이었다. 상철씨는 “아버지 모습입네다. 어머니”라며 오열했다. 두 사람은 이어진 만찬장에서 다시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할머니는 상철씨에게 빵을 잘라 건넸고, 상철씨도 어머니 접시에 떡을 놔주면서 살뜰히 챙겼다.

1951년 1·4 후퇴 때 갓난아기였던 셋째 딸만 들쳐 업고 남으로 내려온 한신자(99) 할머니도 북쪽에 두고 온 두 딸 김경실(72)·경영(71)씨와 재회했다. 한 할머니는 “내가 피난 갔을 때…”라고만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두세 달이면 집에 돌아올 줄 알고 함경북도 흥남 친척집에 딸들을 잠시 맡겨둔 게 평생 이별이 될 줄은 몰랐다. 67년이 지나 할머니가 돼 만난 세 모녀는 손을 꼭 잡은 채 한참 동안 눈물만 흘렸다.

한 할머니의 등에 업혀 월남한 경복(69)씨도 이날 언니들과 재회했다. 경영씨가 “내가 언니예요”라고 하자 경복씨도 “맞아요. 제가 동생이에요”라고 말했다. 경실·경영씨가 가져온 앨범 첫 페이지에는 부모님의 흑백 사진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한 할머니는 “이게 누구야”라며 젊었을 때 본인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 할머니는 “집체(단체) 상봉이 곧 마무리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후 만찬장에서 다시 만난 세 모녀는 한결 다정해진 모습이었다. 한 할머니가 손이 떨려 젓가락질을 잘 못하자 옆에 있던 경영씨가 젓가락으로 닭고기를 집어 입에 넣어줬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첫날 단체 상봉, 북측 주최 환영만찬 순으로 진행됐다. 70년 가까운 세월의 그리움을 풀어내기에는 너무 짧은 만남이었다. 이들은 살을 맞대고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풀어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상봉장 곳곳에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는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조혜도(86) 할머니는 북쪽의 언니 순도(89)씨를 부둥켜안고 “우리 언니 우리 언니, 살아서 만나서 고마워, 너무 고마워”라고 울먹였다.

이번에 방북한 1차 상봉단은 21일 개별 상봉과 객실 중식, 단체 상봉 등 세 차례 더 만나고 22일 작별 상봉 및 공동 중식을 끝으로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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