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 중인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중국도 말레이시아의 재정 문제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구상과 관련된 말레이시아의 프로젝트를 중단시킨 그가 중국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마하티르 총리는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말레이시아가 직면한 재정 문제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며 “중국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 우리 내부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유무역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중국과의 자유무역은 공정한 무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말레이시아 새 정부는 대중 우호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것”이라며 첨단기술과 전자상거래, 자동차 등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희망했다. 4박5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 마하티르 총리는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그룹 본사를 방문해 마윈 회장의 안내로 전자결제, 스마트 물류 등을 참관하고 지리자동차도 둘러봤다.

마하티르 총리는 리 총리와의 회담에 이어 영빈관인 댜오위타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나 환담한 뒤 만찬을 했다. 마하티르 총리가 중국의 극진한 예우 속에서도 말레이시아의 재정 문제를 거론한 것은 스스로 ‘불평등한 계약’으로 지목한 일대일로 관련 사업을 재조정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마하티르 총리는 지난 5월 집권한 뒤 전 정권에서 추진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사업비가 부풀려지고 수익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는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기업인 포럼에서도 “우리는 외부로부터 돈을 많이 빌려야 하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반대한다”며 “중국 기업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과도하게 빚을 진 전 정권이 문제였다”고 밝혔다.

마하티르 총리는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관되는 220억 달러 규모의 동부해안철도(ECRL) 사업과 23억 달러 규모의 송유관·가스관 사업을 중단시켰다. 다만 마하티르 총리는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사업 폐지보다는 사업비 감축 등 조건 변경을 놓고 중국 측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키스탄과 캄보디아 등에서 일대일로 사업이 해당국의 부채 문제로 삐걱거리는 상황이어서 중국 정부는 말레이시아의 이탈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양국 간 어떤 식으로 절충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마하티르 총리는 21일 방중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