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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권 뺏는 IMF는 가라” 위기의 신흥국, ‘구제금융’보다 중국에 손벌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국민의 기억 속에 외환위기에서 구출해 준 은인보다는 ‘경제 신탁통치 기관’으로 더 강하게 남아 있다.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경제주권 탈취’ 수준으로 가혹했기 때문이다. 최근 겪고 있는 고용대란도 당시 IMF의 노동유연화 처방이 남긴 후유증이라는 지적이 제기될 정도다.

이 때문에 경제위기에 직면한 신흥국들이 IMF를 외면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터키 통화가치 폭락사태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에 ‘신흥국 리스크’가 확산되고 있지만 IMF로부터 위기 조정자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0일 지적했다. IMF는 그간 최종 대부자로서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에 자금을 지원해 1994년 멕시코 위기,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등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터키와 파키스탄 등은 IMF 구제금융 신청에 소극적이다. IMF가 구제금융을 대가로 제시하는 예산 삭감, 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등의 요구 수준이 너무 혹독하다는 게 이유다.

중국 이란 러시아 등과의 자금 지원책을 모색 중인 터키는 최근 카타르로부터 15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받았다. 과도한 대외부채로 IMF 구제금융 신청을 모색하던 파키스탄도 이달 새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의 지원을 받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는 분위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IMF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으로 중국 채무를 갚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게 화근이 됐다.

초(超)인플레이션에 직면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도 중국 금융기관 지원을 타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유럽 등이 IMF 지원을 받을 경우 민주적인 선거 실시라는 달갑잖은 조건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17일 대국민 연설에서 “IMF의 ‘발톱’과 불법 처방을 여기서(베네수엘라)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근본 조치 없이 중국 등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결국 악성부채만 늘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중국이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해 항구 운영권을 내준 스리랑카처럼 문제가 더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훈 선임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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