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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1년, “청와대로 향하는 참여의 물줄기를 국회로 돌려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말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20만명 이상이 동의한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 글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종교의 자유에 대한 국민청원. 청와대 제공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회 특별활동비를 폐지해 달라는 글이 수백 건 올라왔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계기로 그가 생전 발의한 특활비 폐지 법안이 재차 주목받은 것이다.

국회 특활비는 2015년부터 ‘의원 쌈짓돈’으로 불리며 폐지 의견이 집중 제기됐음에도 주요 거대정당으로부터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청원 게시판에 분출된 여론의 거센 압력을 받은 정치권은 지난 13일 특활비 폐지에 합의했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이 사건이 왜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람들의 요구가 몰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국민 의사를 대의하는 기구인 국회와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다. 장 위원은 “촛불 정국을 계기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가 매우 높아졌지만 이를 국회를 통해 분출시키지 못했다”면서 “국민청원 게시판이 일종의 임시 분출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구팀이 16일 국민일보에 제공한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실태분석 논문에 따르면 ‘내 참여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내적 효능감(internal efficacy)’과 정치를 향한 관심이 청원참여 의사자에게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국민청원이 정치 참여를 촉진시키는 데는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정부가 내 요구에 답한다’는 ‘외적 효능감(external efficacy)’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면서 “청와대로 향하는 참여의 물줄기를 국회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을 제외한 영국과 호주, 독일 등 대부분 나라에서 시행되는 국민청원은 의회 입법청원의 형태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가의 최고지도자에게 모든 민의가 집중되는 건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가 덜 제도화된 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갖춘 나라인데도 국민들이 절차가 주는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면서 “제도를 불신한 국민들이 대통령의 권력으로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드러난 불신은 정치뿐 아니라 경찰과 사법체계로도 향했다. 지난 6월 서울 관악산과 노래방에서 고교생 A양이 집단폭행을 당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을 올린 청원자는 “주동자가 촉법소년이라 처벌이 어렵다”며 소년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 청원 뒤 가해 학생을 엄하게 처벌하라는 청원이 줄을 이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민청원은) 경찰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한쪽의 입장만을 (반영해) 게시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결국 경찰을 향한 신뢰 문제인 만큼 현 청문감사 대신 미국의 외부시민 감사(civilian review) 등을 도입해 신뢰를 높이는 것도 방안”이라고 말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온라인상 논의를 격렬하게 증폭시키는 역할도 했다. 대표적인 주제가 페미니즘 운동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 의제가 이제 직접적인 거리운동으로도 연결되고 있다”면서 “여성들의 열망과 변화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반면 난민 수용 문제는 청원 게시판이 외려 여론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난민법 폐지 청원은 동의 수가 70만명을 돌파해 지난 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 난민인권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초기 게시판 여론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부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여론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해당 청원들도 내용을 짚어보면 자국민의 빈곤과 안전 등을 먼저 살펴 달라는 게 많았다”면서 “그 같은 어려움이 난민을 향한 반대로 표출되는 게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국민청원 게시판의 앞날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지속가능성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는 게시판에 올라오는 사안을 각 부처로 넘기기만 하는 형태”라면서 “인력과 부서를 강화해 정책으로 실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는 “청원 게시판에 대한 관심은 대통령 개인을 향한 면이 크다”며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 청와대를 쳐다보기도 싫어지면 지금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조효석 박상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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