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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탈을 쓰고… 70년간 아동 수천명 성폭행·은폐

조시 샤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총장이 14일(현지시간) 해리스버그 소재 주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톨릭 성직자의 아동 성범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가톨릭 성직자에게 성범죄를 당한 당사자 및 가족도 함께 참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AP뉴시스


적시된 성범죄 성직자 300여명, 확인된 피해자만 1000명 넘어
입원한 7살 소녀도 짓밟아
⅓ 사망·대부분 공소시효 지나 처벌 대상은 고작 2명뿐
가톨릭, 알면서도 철저히 은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성직자들이 70여년에 걸쳐 아동 성폭력을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고서에 성범죄 사실이 적시된 성직자가 300여명이었고 확인된 피해자는 1000명을 넘었다. 가톨릭은 사제들의 상습적인 성범죄를 상세히 알면서도 이를 철저히 은폐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펜실베이니아주 대배심은 주내 가톨릭 교구 6곳의 성직자 성범죄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이날 공개했다. 2016년 소집된 대배심은 지난 2년 동안 교구별 비밀문건 50만쪽을 열람하고 피해자 및 목격자 면담도 진행했다. 조사 대상 기간은 1940년대부터 약 70년이다. 2000년대 초 미국 가톨릭 성직자 성추문이 불거진 이래 다수 교구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벌인 것은 처음이다.

미국 언론은 보고서 내용이 ‘끔찍하다(horrific)’고 전했다. 한 사제는 편도선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7살 소녀를 찾아가 성폭행했다. 다른 사제는 9살 소녀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한 뒤 성수(聖水)로 입을 씻겼다. 한 남성은 13∼15살 때 성직자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해 심각한 척추 부상을 입었다. 그는 부상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려다 진통제 중독에 걸렸고 결국 약물 남용으로 숨졌다.

보고서에 가해 사실이 적시된 성직자 중 법적 처벌 대상은 단 두 명뿐이다. 명단에 오른 300여명 중 100명 이상은 이미 숨졌다. 나머지 사람들 역시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은퇴하거나 사제직을 그만둔 사람도 상당수다. 피해자 중에서도 이미 사망했거나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숫자까지 포함하면 피해자는 수천명에 이를 것이라고 대배심은 밝혔다.

대배심 증언에 나선 피해자 제임스 밴시클(55)은 사제의 아동 성범죄를 ‘영혼 살인’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10대 소년이던 81년 사제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 하지만 이 사제 역시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불가능하다. 밴시클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모두 영혼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채 살아가야 할 것”이라며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성범죄 실태가 뒤늦게 드러난 건 가톨릭의 조직적 은폐 때문이다. 가톨릭은 문제를 일으킨 사제를 잠시 ‘교정시설’로 보냈다가 복귀시키는 식으로 범죄를 ‘세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에게는 침묵을 강요했다. 대배심 보고서는 현 워싱턴 대주교인 도널드 우얼 추기경도 은폐 작업에 연루돼 있다고 지목했다. 그는 88년부터 2006년까지 피츠버그 교구 주교를 지낸 바 있다. 우얼 추기경은 즉각 성명을 내고 의혹을 부인했다.

대배심은 보고서에서 “제도 개혁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지도자들은 여전히 공적 의무를 회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사제들은 소년과 소녀를 성폭행해놓고도 책임지기는커녕 수십년 동안 숨기는 데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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