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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1980년대 중반 세대 의식 보여주는 비망록”

첫 장편 ‘미스 플라이트’를 낸 소설가 박민정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지하철에서 소설 보는 사람을 만나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며 “갈수록 책 읽는 사람이 적기도 하고 내 세계를 들킨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영희 기자




‘미스 플라이트’란 실수로 발생한 항공기 결항이나 미탑승을 뜻한다. 항공사 조종사나 승무원이라면 가장 끔찍하게 여길 상황이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박민정(33)의 첫 장편 제목이 바로 ‘미스 플라이트’(민음사·표지)다. 그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소설은 젊은 여승무원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대학 때 사고로 숨진 20대 선배의 장례식에 간 적이 있어요. 죽음엔 다 슬픔이 있지만 그래도 나이 많이 드신 분이 돌아가시면 빈소가 잔칫집 같을 때가 있잖아요. 근데 젊은 사람의 장례식은 기묘한 데가 있어요. 술 한 잔을 못 기울일 정도로 황망하기도 하고 삶의 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고….”

주인공 홍유나는 노동조합 문제로 회사 측의 감시와 압력을 받다 죽음을 택한 항공사 승무원이다. 유나의 아버지 정근은 군대에서 비리에 가담했다 불명예스럽게 퇴역하고 가족과 멀어진 상태다. 유나의 이야기는 ‘죽은 자의 남겨진 목소리’로 이어지고, 정근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유를 추적한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소설은 유나의 성장 서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목소리를 비체(非體·살아있지 않은 자)로 들려줘도 되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반면 폭력적인 아버지는 반성하지 않는데 그 내면을 서술하는 게 ‘악마의 변호사’가 되는 느낌이었죠. 하지만 이런 형식이 아니고는 밀도 있게 전개하기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사범대에 다니던 유나는 교생실습 후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친구들과 4대강 공사에 반대하는 순례단을 꾸린다. “제 주변엔 실제 그런 도보 시위대에 참가한 사람도 있었어요. 다 쓴 지금 이 소설을 보면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들의 세대 의식을 보여주는 비망록 같기도 해요. 저희는 이명박정부 때 대학을 다녔으니까 4대강 공사도 봤고요.”

이들의 세대 의식은 뭘까.

“이런 거죠. 사회는 청년들에게 아무런 비전도 주지 않았어요. 단지 어떻게 하든 돈을 벌어서 살아남으라는 것만 주입했어요. 그래서 누군가 생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너나없이 ‘정신 차리라’며 잔소리하는 분위기였어요.”

교직을 포기한 유나는 승무원에 도전해 취업에 성공했지만 결국 직장에 적응하지 못했다. 박민정은 유나를 그렇게 몰아간 조직의 억압성과 야만을 면밀하게 그린다. “주변에 승무원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성희롱이나 실적 강요 등 말도 안 되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인물을 등장시킨 거죠.”

이 소설의 주인공은 회사 조직의 사악함에 죽음으로 답한다. 구조상 좌절이자 실패로 보인다. 사실 “실패를 담은 어떤 시도 실패가 아니다”라고 했던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말에 비춰 보자면 좌절을 담은 어떤 소설도 좌절은 아닐 수 있다. 그 자체가 고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는 ‘이모’나 ‘고모’들이 나오는 책을 쓸 예정이다. 현재 ‘서독 이모’(가제)를 구상하고 있다.

“독일 통일 20주년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분단 중에 벌어진 놀라운 일들에 대해 들었죠. 우리도 한창 평화와 통일에 대해 논의 중이고…. 저는 평소 소설 소재를 정하면 관련 논문을 많이 읽어요.” 소설과 논문이라는 조합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박민정은 “사실 논문과 소설은 플롯의 완결성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아요”라며 슬며시 웃었다.

그는 스스로를 열심히 공부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전 평범하게 자랐어요. 대신 부모님이 딸이 작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정말 많이 사주셨어요. 어릴 때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올 땐 도서관에 간다고 할 정도였죠.” 시대의 부조리와 대결하는 인물 연구도 그에게 크게 어렵진 않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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