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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무죄는 법과 사회 인식의 괴리, 법조계 “누가 재판 맡았어도 그런 결론”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미투 운동’과 관련된 첫 주요 판결인 안희정(사진) 전 충남도지사의 1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기존 법이 사회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사법부는 현행법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단체들은 “모든 권력형 성범죄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법원이 사회 인식과 법의 괴리를 사실상 인정하고도 소극적 판결을 내린 셈이어서 이번 판결은 ‘성 편파 수사’ 반발 흐름에 도화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14일 선고공판을 열고 안 전 지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한 후 간음·추행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안 전 지사는 전임 수행비서 김지은(33)씨에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4차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차례, 강제추행 5차례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나름의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는 피해자 진술이 사실이라고 해도 통상적 수준의 거부나 저항이 없었으면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피해자가 성관계에 대해 명시적인 거부를 했거나 적극적인 동의를 하지 않았는데도 성행위를 할 경우 강간으로 처벌하는 ‘노 민스 노(No means no)’나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 규칙 도입은 입법부에서 다룰 문제란 것이다. 성범죄 판결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런 비판에) 경청할 측면이 있다고 해도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는 현행법상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각종 증거법칙에 따른 사실 인정,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기초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여성학계는 “법원이 최근의 판례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최소 10년은 후퇴한 판결”이라고 평했다. 그는 “훨씬 더 적극적인 해석을 담은 판결이 이미 많이 나왔다”며 “이번 판결은 입법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변호인을 맡은 정혜선 변호사는 “변호인으로서 이번 판결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선진국의 추세에 역행하며 피감독자간음죄의 입법 취지나 대법원 판례에도 어긋나는 판결”이라고 했다.

김씨를 지원해온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도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무수한 ‘위력 성폭력’에 대한 허용 면허”라며 “성폭력 사실을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할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조계는 법원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완전히 위력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누가 재판을 맡았어도 그런 결론이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송혜미 법률사무소 현율 변호사는 “다른 권력형 성범죄의 선례가 될 판결이어서 더 조심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입장문을 내고 “여러 증거에 의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됨에도 무죄를 선고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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