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청 원장의 무비톡] “사람은 기억한다, 고로 사람은 존재한다”



기억이란 어떻게 형성되고, 기억상실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영화 ‘메멘토’와 ‘본 아이덴티티’를 통해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메멘토’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작이다. 주인공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머리를 다쳐 과거의 기억은 유지해도 새 경험은 기억하지 못해, 여러 단서를 문신으로 새긴다. 새로운 기억을 습득하지 못하는 경우를 진행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하는데,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되면 진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손상 이전의 사건은 기억해도 손상 이후 시점에는 학습이 불가능해지고 수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기억이란 정신 활동은 부호화, 저장, 인출의 3단계로 이뤄진다. 진행성 기억상실증은 기억의 부호화나 저장에 문제가 생길 때 발생한다. 어떤 정보를 접하면 해당 정보는 작업 기억에 일시적으로 저장된다. 작업 기억에 저장된 기억은 단기 기억이며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해마의 역할이다. ‘메멘토’의 주인공도 사고 당시 해마 쪽에 손상을 입어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 후반부의 충격적인 반전을 통해 꼭 ‘너의 기억을 확신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는 기억을 잃은 주인공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은 총을 맞고 의식을 잃은 채 바다를 표류하다 어선에 구조된다. 의식을 차린 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조차 잊어버린 주인공은 비밀금고에서 발견한 서로 다른 이름의 여권들과 현금 뭉치, 그리고 총 한 자루를 발견하며 혼란에 휩싸인다.

‘본 아이덴티티’를 통해 정체성 형성에 기억이 차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체성이란 결국 한 사람이 가진 자신에 대한 기억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기억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에서 제이슨 본은 자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었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제이슨 본은 뛰어난 격투 실력으로 적들을 제압한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몸은 자신의 정체를 기억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억은 서술 기억과 구분해서 절차 기억이라고 부른다. 서술 기억의 형성은 해마나 다른 대뇌 피질이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절차 기억은 소뇌와 기저핵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서술 기억은 망가져도 절차 기억은 손상되지 않는 게 가능하다.

주변에서도 기억상실에 빠진 이들을 볼 수 있다. 치매 환자들은 진행성 기억상실증이 먼저 나타나고, 나중에는 역행성 기억상실증이 나타나 예전 기억들까지 서서히 잃게 된다. 일상에서의 기억상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가까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견디기 힘든 두려움일 수 있다. 동시에 가까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크나큰 슬픔이다. 이렇듯 기억은 살아가는 데 있어 공기만큼 소중한 존재다.

정동청 원장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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