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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페이크 에어포스 1’ 수십년 ‘전세기’로 해외 순방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인도 뉴델리 팔람공군기지에서 김정숙 여사와 함께 싱가포르로 가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에 올라 환송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전용기 보잉 747-400 기종.




전용기 없어 항공사 여객기 임차
2∼3급 수행원 좁은 공간 비행, 경호원석 근처 경호용 무기 보관
좌석 밑·승무원 공간까지 침범도, 다리 안 펴지는 하지마비증까지
노무현 前 대통령 구입 원했지만 당시 野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
국가 미래 위해 초당적 합의 절실


1997년 이후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 위상은 ‘수직상승’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높아졌다. 풍전등화의 외환위기를 이겨내고 도약해 세계 10위권 이내의 경제력을 갖췄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의 해외방문에 동행해 보면 상대국 관계자들에게 듣는 말이 “세계 최고의 대통령 의전과 경호”란 것이다. 외교 당국의 상대국 정상과 우리 대통령에 대한 의전과 격식 갖추기는 혀를 내두른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지는 경호도 마찬가지다. 경호원 수로는 늘 1, 2등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보다 청와대 경호실의 치밀한 ‘작전’에 외국 정상과 외교 관계자들은 엄지를 치켜세운다.

매년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등 다자외교 무대에서 우리 대통령은 주요 귀빈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딱 하나 대한민국 대통령의 품격에 맞지 않는 ‘옷’이 있다. 바로 대통령 전용기다. 대한민국 공군 1호기(KAF-001). 겉모습은 이 단어에 어울리게 치장돼 있다. 봉황이 그려진 청와대 문장(紋章), 태극기가 찍힌 꼬리날개, ‘KOREA’ 로고, 보잉 B747-400기종…. 중국 국가주석과 일본 총리 전용기와 같은 크기인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 공군 1호기는 ‘진짜’ 공군 1호기가 아니다. 공군이 소유한 대통령 ‘전용기’가 아니라 항공사가 보유한 여객기를 정부가 빌려 쓰는 ‘전세기’다. 각국마다 정상 전용기를 ‘에어포스 1’이라 부르는 마당에 우리는 우리 대통령 전용기를 ‘페이크(fake·가짜) 에어포스 1’이라 불러야 할 판이다.

어쩌다 이리됐을까. 현재의 전세기는 이명박정부 당시인 2010년 대한항공과 5년 임차계약을 맺고 그해 4월 첫 비행을 한 비행기다. 400석짜리 일반 여객기를 200석 규모로 줄여 군·경호통신망 위성통신망 등을 갖췄다. 여객기 2층을 대통령 휴식 공간, 장관급 이상 1급 수행원 공간, 회의실, 의료실 등으로 개조했을 뿐 나머지 1층은 일반 여객기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5년 계약이 끝난 2014년 박근혜정부가 또 재계약해 5년 임차료 1400억원 수준에서 빌려 쓰고 있다. 이것도 2020년 3월이면 끝난다.

한번에 3∼4개국 1주일 이상의 일정을 소화하는 대통령 해외순방 특성상 수행원들은 호텔보다 비행기 내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제외한 2∼3급 수행원, 취재진, 경호원들은 좁아터진 이코노미석에 앉아 길게는 16시간도 비행해야 한다. 맨 뒷부분 경호원석 근처엔 경호용 무기도 보관된다. 수행원이 너무 많이 타서 무기를 놓을 공간이 부족해지면 좌석 밑, 심지어 승무원 공간까지 침범하기도 한다. 오랜 비행에 구부린 다리가 펴지지 않는 하지마비증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대통령 전용 공간도 넓지 않긴 마찬가지다. 하늘에서도 대한민국 정상으로서 각종 업무를 수행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곳을 둘러본 사람은 하나같이 “대통령이 겨우 쉴 수 있는 정도일 뿐”이라고 한다. 60여대의 각종 위성·군·우주통신 장비를 갖추고 전 세계 곳곳과 통화할 수 있으며, 미사일 회피 장치는 물론 백악관 집무실과 똑같은 환경의 각종 시설로 업무를 수행하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2005년 10월 30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출입기자들과의 북한산 산행에서 "공군 1호기가 너무 낡아 국내용이다. 미국 가고 유럽 가서 정상외교 하려면 지금 1호기(1985년 도입된 보잉 B737)로는 안 된다. 새로 장만하는 결정을 하면 이후 대통령이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 야당이던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이를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 "다음 정부 대통령 전용기를 챙겨줄 만큼 나라가 한가하고 할 일이 없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2008년에도 다시 구입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정쟁(政爭)으로 묻혀버렸다. 구입 예산은 2억5000만 달러 규모로 한사코 야당이 된 정당들이 반대하는 명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대의 대통령 전용기가 모자라 39억 달러나 들여 최신 기종을 한 대 더 사겠다는 미국 백악관이나, 2대 이상의 전용기를 운용하는 중국 일본에 비하면 별로 큰돈이 아니다.

여야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자 국민들이 바라는 일은 '초당(超黨)적 합의'일 것이다. 서로 당파적 이익만 계산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것 말이다. 이 초당적 합의가 무엇보다 시급하게 적용돼야 할 사안이 바로 대통령 전용기 구입 건(件)일지 모른다. 한 정치권 인사는 "솔직히 여야 할 것 없이 국력이 신장된 한국 국격에 맞는 전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로 야당이 돼 반대한 전력(前歷) 때문에 다들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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