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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지구촌…세계는 지금 국수주의·극단주의에 휘청



세계경제 2008년 금융위기로 첫 타격, 트럼프는 中·EU 겨냥 무역전쟁 선포
‘스트롱맨’ 푸틴·시진핑, 장기집권 길 터…유럽 선진국까지 극우 정당 연일 약진

경제적으론 1930년보다 훨씬 안정적, 美 경제 사실상 완전고용… 최대 호황
문화계 인사도 대부분 파시즘에 반대, 빈부격차 증폭·민주주의 회의는 팽배


“1930년대가 돌아오고 있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얼마 뒤 찰스 영국 왕세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소수자에게 공격적인 포퓰리즘 집단이 대두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면서 “이는 1930년대의 어두운 나날을 되새기게 하는 기분 나쁜 메아리”라고 말했다.

국수주의와 반(反)이민, 포퓰리즘, 극단주의가 지구촌을 휩쓸면서 1930년대의 암흑기가 현재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당시 세계 각국은 대공황의 여파를 모면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포기하고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했다. 여기에 더해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극우 파시즘이 횡행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도화선에 불을 댕기고 말았다.

2010년대 역시 비슷한 길을 갈 조짐이다. 냉전 종식 이후 마련된 세계 경제질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첫 타격을 입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유럽연합(EU)을 겨냥해 글로벌 무역전쟁을 일으키면서 결정적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부분의 국가가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서 세계경제가 급속히 위축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다. 일부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 관세 정책을 1930년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비견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으로 인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 법을 근거로 보복 관세를 부과하다 도리어 대공황의 파장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실책을 범했다.

‘스트롱맨’의 대두와 민주주의의 후퇴 역시 두드러지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00년부터 18년째 집권 중이다. 중국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석직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한 헌법 조항을 폐지함으로써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터키에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올해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를 거둬 입법·사법·행정 3권을 거머쥔 ‘21세기 술탄’으로 등극했다. 2010년 발생한 ‘아랍의 봄’은 일부 국가에서 독재자를 몰아내는 성과를 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창궐 원인도 제공했다.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가 비교적 자리 잡았다는 유럽으로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2010년 집권 이후 시민권을 제한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등 독재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3선에 성공한 오르반 총리는 “서구적이지도, 자유주의적이지도, 자유민주주의적이지도, 심지어 민주적이지도 않은 체제로도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내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지에서도 극우 정당이 연일 약진하는 기세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까지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반EU, 반이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은 더욱 힘을 얻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세계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확립된 안보질서마저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미국이 반세기 넘게 주도해온 세계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오랜 동맹국 정상들에게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놓지 않으면 나토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고 압력을 가했다. 이어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 냉전 시절부터 숙적이었던 러시아 정상인 푸틴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감싸는 태도를 보여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계획에 동조하고 있다”면서 “그 계획이란 구소련을 붕괴시킨 서구 자유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트럼프 시대는) 1930년대만큼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두고 “트럼프 이전에 등장한 트럼프”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1930년대와 2010년대가 똑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2010년대는 1930년대보다는 훨씬 안정적이다. 대공황 직후인 1930년대 미국 실업률은 무려 25%에 달했다. 이런 엄청난 경제위기는 각국에서 전체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데 토양을 제공했다. 이에 반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실업률은 10%를 넘은 적이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경제는 사실상 완전고용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호황이다.

전체주의와 극단주의에 대한 현대인의 거부감도 아직까지는 여전하다. 티모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사학과 교수는 “1930년대에 활동하던 예술가 등 유명 인사들 중에서 파시즘 지지자가 상당히 많았다”면서 “반면 오늘날 문화계 인사들은 거의 대부분 파시즘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30년대와 달리 파시즘을 창조적인 문화로 보는 현대인은 거의 없다”고 부연했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도 아직 이르다.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연일 증폭되고 있어서다. 2016년 미국의 소득 상위 1%가 벌어들인 돈은 전체 국민소득의 20%였다. 이에 반해 하위 50%의 소득은 전체의 13%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최대 공로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잃어 불만이 큰 미국 ‘러스트 벨트(미국 북·중서부 산업지역)’의 백인 노동자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민자 유입이 저소득층의 일자리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인종주의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1930년대 서구 사회에서 유대인은 격렬한 혐오의 대상이었다. 2010년대에는 유대인 대신 무슬림이 그 화살을 맞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점차 떨어지는 것도 위기의 징후다. 1930년대 교육받은 성인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해 있었다. 사회주의에 경도된 진보 지식인들은 구소련 독재체제의 효율성에 매료돼 있었고, 보수 인사들 역시 독일 나치체제의 국가 운영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오늘날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6년 미국인과 유럽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1980년대 출생자 4명 중 1명만 “민주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반면 민주주의의 위기를 직접 겪고 극복한 1930년대 출생자의 응답률은 75%를 넘겼다. 영국 가디언은 “1930년대는 이제 생생한 기억이 아니라 역사 속 사건이 됐다”면서 “고난과 역경의 시대를 거치며 얻은 굳건한 신념이 도전을 받고 전복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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