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달리는 기계인간

백남준 ‘피버 옵틱(Phiber Optik)’, 혼합재료, 1995. 이호재컬렉션


영상이 흘러나오는 6개 TV를 이고 진 로봇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다. 2m가 넘는 육중한 몸집으로 작은 바이크에 올라탄 모습이 익살스럽다. 몸체 곳곳에는 여러 도시를 순례했음을 상징하는 스티커들이 촘촘히 붙어 있다. 대륙횡단이라도 한 것일까? 고단해 보이지만 당당한 로봇인간이다. 누가 봐도 백남준(1932∼2006) 솜씨임을 알 수 있는 이 작품 제목은 ‘피버 옵틱(Phiber Optik)’이다. 피버 옵틱은 아홉 살 때부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미국의 천재 해커 마크 애버니(46)의 닉네임이다. 백남준은 1990년대 초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큰 논쟁을 일으켰던 피버 옵틱을 작품의 타이틀로 올리고, 어린 천재에게 방점을 찍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때 철창 신세도 졌던 그는 이제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 보안전문가로 맹활약 중이다.

예술 천재 백남준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이버네틱 아트’를 구현한 선각자다. 인공두뇌학을 가리키는 사이버네틱스를 예술과 결합하며 기계인간의 미래를 예고했다. 이 작품도 사람이 앉을 자리에 로봇인간을 등장시켜 인간과 기계의 교집합을 흥미롭게 모색했다. 오늘날 AI가 인간의 영역을 무섭게 파고드는 상황에서 백남준의 20년 전 통찰은 곱씹어볼 요소가 많다.

‘백남준 10주기전’(2016) 등에 선보인 ‘피버 옵틱’은 현재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백남준 김환기 박수근 권진규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 100년을 조망한 특별전에서다. 출품작 110점은 가나아트 창업주 이호재 회장이 30여년간 수집한 컬렉션이다. 가나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소장품을 공공의 자산으로 전환한 그는 “머잖은 미래에 미술관을 짓고 미술을 사랑하는 대중과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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