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람들의 일상 담백하게 전하는 게 ‘장수 비결’

지난 6월 방영된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한 장면. 브라질 렌소이스 사막을 카메라에 담았다. 렌소이스 사막은 우기가 되면 사막 곳곳에 호수가 생긴다고 한다. KBS 제공
 
홈페이지에 게시된 세계지도로 특정 지역을 클릭하면 해당 국가를 다룬 방송을 확인할 수 있다. KBS 제공


매주 토요일 오전 9시40분이면 TV에서 흥겨운 오카리나 소리가 흘러나온다. 오카리나 연주가 한태주가 만든 ‘물놀이’라는 곡이다. 제목은 낯설겠지만 한국인이라면 이 음악을 모를 리 없다. 올해로 자그마치 14년째 안방에 방영 중인 방송의 주제가여서다.

프로그램 제목은 KBS 1TV를 통해 전파를 타는 ‘걸어서 세계속으로’. 애청자들 사이에서 ‘걸세’로 통하는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이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편집으로 흥미를 돋우지도 않는다. 그런데 매주 시청률이 7∼9%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프로그램 제작진은 어떤 방식으로 여행지를 고르며 어떻게 촬영을 진행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프로그램이 처음 방송된 건 2005년 11월 5일이었다. 이때부터 최근까지 방송에서 소개한 나라는 140개국이 넘는다. 이들 국가에서 제작진의 발길이 닿은 곳을 계산하면 1500개 도시에 달한다고 한다. 여행 금지국을 제외하면 거의 세계 일주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순탄한 길만 걸어왔던 건 아니다. 2009년 10월 갑자기 종영됐던 적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결국 이듬해 1월 방송을 재개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이 프로그램이 거둔 성과를 실감할 수 있다. 세계지도 위에는 그동안 방송에서 소개한 지역이 표시돼 있는데, 특정 장소를 클릭하면 해당 지역을 다룬 영상이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그 어떤 여행책보다 근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요즘 같은 휴가철이면 이 프로그램은 더 각광을 받는다. 애청자들은 방송에 소개된 여행지를 참고해 휴가지를 고르거나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해 여행지 정보를 구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특징 중 하나는 ‘1인칭 시점’에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내레이션에는 “∼로 떠나보자”거나 “출출해진 나는∼” 같은 대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애청자들은 이런 내레이션을 통해 방송을 보는 내내 여행에 동참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프로그램이 주말 오전 안방에 ‘힐링’을 선사한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국적인 풍광을 한가득 담아내기 때문이다. 남미나 극지방처럼 여행하기 힘든 지역을 다룰 때도 많다. 여행지의 감흥을 배가시키는 음악도 이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방송 1회분 제작을 PD 한 명이 도맡는 ‘1인 방송’의 성격을 띤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는 총 5∼6명 수준인데, 이들 PD는 각자 자신이 가고 싶은 목적지를 고르고, 항공권을 사고, 여행지 동선을 짠 뒤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현지에서 구한 코디네이터와 함께 여행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안방에 전달할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대본도 이들 PD가 직접 쓴다. PD 한 명에게 섭외 촬영 편집 등을 하는 데 허락된 시간은 5∼6주 정도이니 빠듯한 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제작진 중 한 명인 김가람 PD를 만났다. 그는 “물가가 싼 나라든, 비싼 나라든 방송 1회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제작비는 같다”면서 “해당 국가에서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려면 동선을 치밀하게 ‘설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생들이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모습과 비슷할 거예요. 어디에 돈(제작비)을 쓸지 고민해야 하죠. 그래서 항공권은 ‘땡처리’로 나오는 최저가 티켓을 사는 게 일반적이에요.”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심심하지만 재밌는 이상한 콘텐츠다. 제작진은 ‘예쁜’ 그림을 안방에 선사하는 여타 여행 프로그램과 달리 여행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김 PD는 “해외에 나갔을 때 시청자들이 실제로 받게 될 느낌, 외국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을 담백하게 전하는 게 우리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일 것”이라고 자평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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