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형제처럼 정겨운 야자나무·향나무… ‘토종의 풍경’

한국에 사는 외국인을 지속적으로 카메라에 담아온 김옥선 작가는 2011년부터 외래종이지만 어느새 제주 집집마다 하루방처럼 들어앉은 야자나무를 찍기 시작했다. 사진은 최근 서울 중구 일우스페이스 전시장에서 나무 작품 사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작가. 권현구 기자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 가족을 담은 ‘세라네 가족’(2010). 작가 제공
 
서귀포 하원동의 가정집 풍경을 찍은 '로컬 하원(2013). 작가 제공


지난 5월,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한 예멘인 500여명이 집단적으로 난민 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받았던 선득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거부감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루비콘강 앞에 섰다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에 대한 감지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이슈가 되어버린 예멘 난민 수용 문제가 내 마음을 점거하면서 떠오른 작품이 제주에 거주하는 작가 김옥선(51)의 야자나무 사진이다. 검은 현무암으로 나지막하게 쌓은 돌담이 있는 전형적인 제주의 집. 담 너머로 야자수가 껑충하다. 어떤 집엔 키 작은 향나무가 전봇대처럼 솟은 야자나무를 둘러싸듯 서 있다. 생업에 바쁜 주인이 돌보지 않은 듯 야자수도 향나무도 매무새가 헝클어져 있다. 작가는 부러 흐린 날을 택해 피사체 어느 것 하나도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향나무가 주는 선비적인 느낌, 야자수가 갖는 이국성은 거세된 채 둘은 마치 오래전부터 형제처럼 서 있어온 것처럼 토종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따지고 보면 외래종인 야자나무과의 종려나무가 제주에 상륙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973년 제주도 종합관광계획에 따라 서귀포 중문관광단지가 조성되면서 하와이에라도 온 듯한 이국적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중문단지와 제주의 관문인 제주공항 일대에 정책 차원에서 심어진 것이 시초로 알려진다. 야자나무는 민가에도 퍼져 집집마다 마당에 심어졌다. 마치 내 어릴 적 경남 합천 외가 마을에 집집마다 한 그루 서 있던 감나무처럼 정다운 존재가 됐다. 외래식물이 겨우 40여년 만에 제주의 가정집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온 것이다.

김옥선에게 나무는 사람이다. 지속적인 관심사였던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의인화다. 잡지사 사진기자를 하다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선 90년대 중반 이후 그는 늘 사람을 찍어왔다. 처음엔 90년대를 사는 X세대 여성들을 표상하는 여성 누드를 찍었다. 그러다 외국인 남자와 한국인 여성의 국제결혼을 소재로 담은 일명 ‘해피 투게더’ 시리즈를 내놔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국제결혼을 했어요. 94년에 독일인 남자랑요”라는 대답에 많은 것이 이해가 됐다. 올해 일우사진상을 수상해 서울 중구 일우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가진 그녀를 지난달 전시장에서 만났을 때였다. 서울 출신의 그녀는 제주대학교 객원교수였던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여 95년 제주로 이사 갔다. 자연스레 그곳에서 국제결혼한 부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찍었다. 모든 결혼이 그렇지만 국제결혼은 특히 문화와 문화, 정체성과 정체성 간 충돌이었고, 이는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2007년부터는 학원 강사나 사업을 하러 제주에 사는 외국인들이 단독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인위적으로 웃는 걸 싫어한다는 작가는 그들에게 “웃지 말고 평소대로 있어 달라”고 주문한다고. 야외에서 찍었던 외국인들은 언제부턴가 실내로 들어왔다. 그들의 거주공간은 월넛 컬러의 붙박이장과 침대, 소파 등 서구식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그곳에 외국인이 들어앉으니 대비감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국식 실내처럼 보이는 묘한 전이가 김옥선의 사진이 주는 매력이다.

김옥선의 작품 ‘세라네 가족’은 편견의 허를 찌른다. 미국인 남편과 불가리아인 아내와 장모, 그리고 이들 부부가 입양한 한국인 딸 세라. 전형성을 따지자면 이 사진은 유럽이나 미국의 어느 가정 풍경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외국인 투자 비자로 와서 외국어학원을 경영하며 제주에서 20년도 넘게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다. 여느 집 거실처럼 꽃무늬 패턴의 카펫이 깔려 있고 붙박이 장식장엔 가족사진이 빼곡한데, 딸의 유치원 졸업사진이 유독 눈길을 끈다.

외국인 시리즈를 해오던 그가 새로운 대상을 찾아 탐색하던 2011년 12월의 어느 날 아침이다.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사는 작가가 고교생 딸을 등교시키고 오는 길이었는데, 야자수가 확 눈에 들어오지 뭔가. 평소 무심히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러운 제주 풍경이 된 그 외래종 나무가 갑자기 제주에 사는 외국인과 오버랩 됐던 것이다.

미술가는 때론 예민한 촉수로 사회에 대한 예언자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작가는 2013년부터 난민을 찍어오고 있다. 한국에서 난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미 경기도 김포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종교적 탄압을 피해 온 줌머인 마을이 있다. 난민 신청자 수는 점점 늘어 지난해 1만 명에 이어 올해는 1만8000명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난민 인정률은 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인 35위다.

제주는 조선시대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해 왔던 땅이다. ‘무비자 관광 천국’이 된 그 땅에 지금 예멘인이 찾아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향나무와 야자나무의 동거가 평범하게 보이는 김옥선의 사진 작품은 많은 발언을 한다.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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