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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도 못 바꾼 아이 표정, 집이 바꿨다



초등학생인 다영(가명·10)이는 항상 아빠가 잠든 오후 11시에 집에 돌아왔다. 다영이는 좁은 컨테이너박스 집에서 아빠랑 단둘이 있는 게 갈수록 불편하고 답답했다. 늦은 시간에 혼자 다니면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다영이의 생활은 임대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자기 방이 생긴 다영이는 이제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간다.

민정(가명·8)이네 집엔 화장실이 없었다. 가까운 주민 센터에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화장실을 써야 했다. 민정이는 사람을 만나 좀체 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집에서도 입을 닫았다. 심리치료를 받아도 상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민정이를 바꾼 것은 집이었다. 방과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진 집으로 가게 된 민정이는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사소한 일조차 어려웠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해 경기도 지역 아동 3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거빈곤가구 아동의 66.9%는 친구를 집에 초대해본 적이 없었다. 51.7%는 생일잔치나 가족행사를 가져본 적이 없었고, 하루 세 끼를 다 못 챙겨 먹는 아이는 47.5%로 일반가정(27.0%)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

성장기에 겪는 불행한 경험이나 박탈감, 결핍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감정, 욕구를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고, 자신의 꿈을 형편에 맞게 낮추면서 아이들은 ‘애늙은이’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위생적인 주거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은 늘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라며 “또래 아이들에 비해 너무 큰 심적 부담을 지는 것이 건강한 정서발달을 저해한다”고 분석했다.

생존의 문제에 매일 직면하는 아이들은 진로를 탐색할 여유가 없다. 임 교수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장단점, 관심사를 생각해보고 미래를 꿈꿀 심리적 여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시기의 주거환경은 아이의 습관, 생활방식도 결정한다. 한 사회복지사는 “온갖 잡동사니로 꽉 차 비위생적인 비닐하우스에 살던 한 여고생은 보름 동안 씻지 않고 좀이 쏠 때까지 교복을 씻지 않았다”며 “부족한 위생관념이 성인이 돼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거빈곤가구는 소득이 일정치 않아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관리비, 대출 상환금을 마련할 여유가 없어 엄두를 못내는 경우도 많다.

김승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은 1일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만이라도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무상보육, 무상교복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집은 개인의 자산이라는 개념이 강해 기본 권리라는 인식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공동기획입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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